‘밥 먹었냐’ 묻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밥 먹었냐’ 묻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 박지호
  • 승인 2007.03.29 0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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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인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② 2세들의 눈으로 본 한인 가정

 

▲ 2세들이 바라보는 한인 가정은 따뜻했다. 인터뷰이기보다 진솔한 나눔의 시간에 가까웠던 이번 좌담은 1세 부모님들에게 향한 2세들의 따뜻한 사랑과 소박한 바람을 털어놓는 자리였다.

2세들과 함께 나눈 한인 가정 이야기는 유쾌했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각자의 가정사를 털어놓는 동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자기 이야기인 양 ‘맞아맞아’하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해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이들의 마음을 한마디로 규정하긴 쉽지 않았다. 이번 좌담은 인터뷰이기보다 진솔한 나눔의 시간에 가까웠다. 2세들이 1세 부모님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주문부터 바쁘고 힘들지만 함께 여행가고 싶다는 바람까지 다양했다.

이번 좌담에는 뉴욕나약신학교에 다니는 이광노 씨(23, 대학생)와 뉴욕한인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신디 신 집사(34, 가정주부)가 참여했고, 퀸즈장로교회에 다니는 보이스 김 씨(26, 교사)와 퀸즈한인교회 EM 사역자인 김영자 전도사(63)가 자리를 함께했다. 진행은 플러싱에 있는 Living Faith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인 노진산 목사(44)가 맡았다.

 

▲ 좌담의 진행을 맡은 노진산 목사. 13살 때 미국으로 건너 왔다. 현재 Living Faith Community Church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세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노진산 / 한국 가정에서 자라면서 배운 특유의 생활방식이나 전통이 뭐가 있을까. 1세들에게 배운 삶의 태도나 가치관에 대한 부분부터 나눴으면 좋겠다.

보이스 김 / 부모님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시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물건은 두 손으로 받아라 등등의 유교적인 생활 방식들을 배우면서 자랐다. 웃어른을 존중하는 좋은 미덕을 배웠지만, 한편 이런 문화가 부모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걸림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진산 / 나는 아직도 형들을 ‘큰 형님’, ‘작은 형님’이라고 부른다. 할머니가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겠다 싶어 한번은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애들한테 이제부터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애들이 ‘왜 그래야 하냐’며 펄쩍뛰더라. 우리는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다. (웃음) 

신디 신 / 한국 사회는 나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나이를 꼭 물어본다. 그때마다 상당히 당황스럽다. 미국에선, 특히 여자에겐 나이를 묻지 않는다. 어떤 분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더라. 미국에서는 친오빠도 오빠라고 안 부르는데…. 

Never Give up…성실함을 배웠어요

이광노 / 아버지를 보면서 성실한 삶의 태도를 배웠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나가셔서 밤  늦게 들어오신다. 혈압이 높아서 혈압약을 먹어가면서도 그 힘든 생활을 반복하신다. 일하시는 것도 좋지만 한편 마음이 아프다.

노진산 / 이민 1세대는 정말 열심히 사셨다. 우리 어머니도 일을 두 가지나 하셨는데, 아침 7시에 바느질 공장에 나가서 4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8시부터 밤늦게까지 청소하는 일을 하셨다. 

신디 신 / 우리 어머니도 바느질 공장에 다니셨는데, 일하시다가 실수하면 집에 일감을 갖고 오셨다. 그날은 온 식구가 함께 매달려서 몇 시간 동안 바느질 작업을 도와야했다. 물론 돈 때문이다. 그래서 난 돈이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아니 증오했다….(눈물) 주말이나 방학 때도 언니들과 함께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그러니 내겐 주말이 없었다. 그런 기억들 때문에 결혼 후에는 매주 토요일을 가족의 날로 정해서 그날은 무조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돈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매번 강조한다.

노진산 / 한번은 다른 주에 사는 미국 친구들이 놀러왔다. 베이사이드나 플러싱을 함께 거닐다가 주변의 집들을 보면서 “얼마쯤 할 거 같나”고 물었더니, “대략 10만에서 30만 불정도?”라고 대답했다. 내가 70~80만 불이 정도한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미국 사람들이야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지만, 그런 것도 없이 맨손으로 터를 닦은 이민자들이 어떻게 이런 비싼 집에서 사냐는 거다. 볼티모어 살 때였는데 아주 고급스런 집을 사놓고, 주중에는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하다가 주말에는 그 집에 가서 청소하고 돌아오는 한국 분도 있었다. 
 

 

▲ 뉴욕나약신학교에 다니는 이광노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 왔다. 1세와 2세들을 섬기며 양쪽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광노 / 우리 부모님도 정말 열심히 일하신다. 그런데 영어가 안 되니까 아버지는 매번 나한테 전화를 한다. 아버지 고객들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열심히 통역해주면서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데, 문제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아버지가 내 탓을 한다는 거다. 그럴 땐 정말 섭섭하다. 처음엔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나’ 했는데, 많은 친구들이 나랑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더라. 그런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면 ‘스트레스 받는다’, ‘정말 일하기 싫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신기하게도 ‘그래도 우리가 부모님을 도와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김영자 / 부모님의 일을 돕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부모님들도 자기 일터로 자녀들을 불러서 함께 일하면서 삶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어떤 가정은 부모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딸을 일류 사립학교 보냈다. 부모는 고생하는 것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딸이 가게에도 못 오게 하고 공부만 시켰다. 부모는 그 고생을 하면서 뒷바라지 하는데, 그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상류층의 문화를 누리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런 애들은 나중에 일류 대학을 나오고, 돈을 많이 벌어도 부모님을 도울 줄 모른다. 어렸을 때 도왔던 애들이 커서도 돕는다. 어떤 학생한테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냐고 하니까 “자신이 선택한 거잖아요”하고 대답하더라.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돼요?

신디 신 / 한국 부모님들은 애정 표현을 잘 못하니까 미안할 때는 보통 과자를 사준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자녀들에게 자주 애정 표현을 하려고 한다. 아이들한테도 ‘사랑한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김영자 / 가장 중요한 문제다. 애들이 수련회 갔다가 은혜 받고 하나같이 하는 말이 “지금까지 부모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다”는 거다.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고 모든 벽이 무너졌지만, 정작 부모님한테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 하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이민 가정의 현실이다. 

노진산 / 아마 사랑한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를 거다. 집에 가서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해봐라. 아버지가 ‘이게 미쳤나’ 하지 않겠나. (웃음) 물론 부모님들의 ‘밥 먹었냐’는 말 속에 모든 사랑이 담겨 있는 줄 알지만, 2세들이 부모님의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김영자 / 부모님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한국 부모님은 ‘누구야’ 하고 이름 한 번 부르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사랑이 조용히 왔다 갔다 하는 줄 안다. (웃음) 한번은 한 학생이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막 우는데 그때 그 학생의 엄마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가 어쩔 줄 모르더라. 안아줘야 하는데 보고만 있기에 결국 내가 대신 안아줬다. 부모님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의 언어를 말이다. 

두 얼굴을 가진 부모님

노진산 / 부모님들이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장로님으로서와 아버지로서, 그리고 권사로서와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부모님이 우리를 막 야단치다가도 손님 오시면,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으면서 손님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체면이 중요한 한국 문화에선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상대방을 배려해서 손님이 오면 반갑게 반겨주는 것이 당연할지 몰라도 2세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정직하지 않게 보인다. 미국 사람들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지금 내가 기분이 안 좋다. 그러니 나중에 보자”라고 말하는데, 1세 부모님들은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다른 사람에게 웃으라고 가르친다.

 

▲  미국에서 태어난 보이스 김 씨는 뉴욕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그는 목회자 자녀로서 겪었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눴다. 

보이스 김 /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교회에서 눈치보고 지내느라 힘들었다. 한창 사춘기 때는 그냥 우울할 때도 있고, 그래서 웃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꼭 교회에서 말이 나온다. 부모님도 “목사님 아들이 그러면 되냐”고 야단치시고…나중엔 찡그리고 있다가도 교인들이 쳐다보면 활짝 웃으면서 ‘안녕하세요’하게 되더라. (웃음) 

김영자 / 부모님들의 신앙과 삶의 불일치가 심각한 문제다. 교회 나가면서 복음의 능력으로 삶의 태도도 변혁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본다. 2세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1세들이 신앙과 삶이 통합된 영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왜곡된 영성이 이민 사회에 가져다주는 부작용이 엄청나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처럼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노진산 / 물론 체면문화(shame culture)권에서 온 동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전성(integrity)과 죄의식문화(guilt culture)에 뿌리를 둔 서양 문화권에 속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통전적인 삶의 모습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일관성의 결여가 문제다. 작은 예로 1세 부모님들이 일본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차 타고 다니고, 일본 제품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조금만 의식있는 2세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혼돈스러워한다.

신디 신 / 남편은 대학 때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며 교회 나가기를 싫어했다. 예전에 다른 교회에서 운전학원을 운영하는 집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새신자가 오면 금세 따라붙어서 영업을 시작한다.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들은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다.

노진산 / 아내가 가끔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다보면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흥분할 때가 있다. 한번은 큰 애가 “you…”라고 말하니까 아내가 “뭐 너 지금 엄마한테 ‘you’라고 그랬어? 엄마한테 ‘너’가 뭐야”하며 흥분하더라. 만날 'you'라고 말해 온 아이 입장에선 황당하다. 좋을 땐 문제가 안 되는데, 기분 나쁘면 그런 것도 꼬투리다. (웃음)

손님 놓치지 않으려다 자녀들 잃어버린다?

 

▲ 신디 신 집사는 6살 때 목사님이셨던 큰 아버지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다. 

신디 신 / 어렸을 땐 부모님과 놀러가는 게 소원이었다. 부모님과 놀러간 역사가 없었다. 고작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가 전부였다. 그래서 지금은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아이들과 여행을 가려고 노력한다.

김영자 / 어느 목사님 이야긴데 어린 딸이 “아빠 양아버지 한 명 더 얻을 수 있어?”하고 묻더란다. 깜짝 놀라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아빤 늘 바쁘니까 놀아줄 아빠가 한 명 더 필요해”라고 대답했다는데 얼마나 서글픈 이야긴가.

노진산 / 1세 부모님들이 가족들과 여행갈 시간과 돈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데, 그건 변명이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다. 뉴욕에서 집세 내고 살 정도면 충분히 가족과 함께 여행갈 수 있다.

이광노 / 한번은 고모가 한국에서 오셨다. 이번에는 부모님과 함께 놀러가겠구나 싶었는데, 부모님이 고모랑 둘이서 여행 다녀오라고 하는데 환장하겠더라. 난 정말 부모님하고 놀러가고 싶은데… 부모님들은 일 안 하면 굶어죽는다는데, 하루 일 안 나간다고 굶어죽겠나. 그런데 가게 안 가면 손님 다 놓친다고 말할 땐 나도 할 말이 없다.

노진산 / 우선순위의 문제다. 가게 문 닫으면 손님을 잃어버린다는 말을 하는데, 그러다가 자녀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과 여행을 간적이 별로 없다. 지금에서야 일 년에 한번 씩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이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다. 아이들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한국 사람이라서 감사한 것이 진한 가족애 아닌가. 그게 삶의 중요한 본질인데 그걸 놓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보이스 김 / 한국 부모님들은 공부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다. 자녀들이 의대나 법대에 가는 것을 원하시는데,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대단하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시험 점수가 떨어지면 애들이 금세 우울해한다. 심지어 우는 애들도 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울 정도로 공부를 강요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이광노 / 부모님들은 공부만 잘하면, 아무 문제없는 줄 안다. 1.5세나 2세 중에 상당수는 마약에 손을 댄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우리 아들이 공부 잘하고, 성실하니까  그런 거 안 하겠지 생각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 퀸즈한인교회 EM 사역자인 김영자 전도사는 1973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1981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이후 줄곧 1.5세와 2세들을 위한 사역을 해오고 있다.

신디 신 / 우리 부모님도 항상 공부 잘하라는 말을 했다. 오직 그것만이 나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라 뭐가 되라고 말하는 것보다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가르치려고 한다.

김영자 / 한국 사람들이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대한 의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이스 김 /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보지 않고, ‘왜 점수가 이것밖에 안 나왔냐’고 따진다. 또 어머니들끼리 자녀들 성적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데, 애들을 죽이는 짓이다. 어머니들끼리 했던 이야기들 자녀들이 다 듣고 있다. 부모들이 하는 이야기 때문에 애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진산 / 1세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 척도가 학교 공부다. 그리고 자녀의 인성이나 사회적인 관계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자녀를 다그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면서 느낀 피해의식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 수 있다. 이민 1세대가 언어 장벽 등으로 인해 주류 노동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자영업 등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왔다. 그러다 보니 1세는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자녀들만큼은 주류 사회로 진출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길 원하는 거다. 전문직이나 기술직을 강요하는 것도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제 우리 1세 부모님들이 좀 더 넓고 멀리 바라보고, 자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자신을 가꿔가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열어주면 좋겠다.

이광노 / 너무 즐겁고 편안한 자리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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