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잠수부는 두렵다
민간 잠수부는 두렵다
  • 길벗
  • 승인 2014.04.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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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길벗의 몰래 읽은 책(2)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이 폐허를 응시하라>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펜타그램, 2012) ⓒ <미주뉴스앤조이>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알파 잠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 벨을 이용한 구조 제안이 거부되었지만 당국이 다른 곳으로부터 다이빙 벨을 몰래 빌리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조 당국은 또 한번 비난을 받아야 했다. 구조를 책임진 쪽에서는 일사불란한(구조 과정 내내 그런 장면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구조 지휘 계통도 생각해야 하고, 민간인 투입시 발생할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도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종인 대표는 천안함 폭침설이 아닌 좌초설을 주장해온 사람으로 만약 그의 구조 작업이 성공한다면 천안함에 대한 그의 의견도 신뢰를 얻을 터, 정부로서는 이래 저래 불편했을 것이다. 결국 여론에 밀려 생존자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진 시점에 가서야 다이빙 벨 투입을 허락한 것은 모양새가 더 좋지 않다.

하지만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보면 이종인씨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다른 차원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일종의 재난 보고서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부터 캐나다 핼리팩스의 화물선 폭발, 멕시코 대지진, 9.11, 뉴올리안즈 지역을 강타한 카트리나 등과 같은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를 다루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는 가게 주인들이 식품을 모두 방출했고, 정육업자들은 난민촌에 고기를 보냈으며 여러 종류의 자원 봉사들이 줄을 이었다. 멕시코 시민사회는 1985년 멕시코시티를 강타한 지진 재해 현장에서 발견한 연대의 정신으로 1926년 이래 유지되어온 제도혁명당 중심의 단일정당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9•11 사건도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끌어들였다. 343명이나 되는 소방관의 의로운 죽음은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대비되지만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빌딩으로 진입한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도 많았다.
당시 시내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던 60대 시각 장애인 삼브라노는 생전 처음 본 두 여인이 부축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았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 탈출한 사람들은 초면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잡은 손을 놓치 않았다.

권력자들은 시민들의 각성이 두렵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제일 먼저 확인된 것은 정복할 수 없는 시민 사회의 단결력이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항하는 애정과 연대의 힘이었다. 공격의 은밀함과 오만함에 대항하는 개방된 공적 생활의 힘이었다…..이런 것들은 일종의 승리였고, 겁먹지 않겠다는 거부였고, 함께 모이려는 의지였고, 여러 면에서 테러리즘의 정반대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반면 시민들의 각성을 두려워하던 부시 행정부는 “국민들을 집안에 머물러 있고 경기부양을 위해 쇼핑을 하고 큰 차를 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지원하도록 유도했다.”
카트리나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올리언스의 80%가 침수되고 6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카트리나 사태 (2005년)때 도시는 거대한 수용소가 되어야만 했다. 주방위군이 투입되었으며 이라크 전쟁 때 민간인 살상으로 악명 높은 블랙 워터의 용병들도 투입되었다. 주정부는 수색과 구조활동을 접고 약탈과의 전쟁에만 집중하라고 명령했다..

평소 가난한 흑인들의 밀집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들은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채 현장을 약탈과 강간이 그치지 않는 지옥처럼 묘사했다. 이재민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들로 취급받았다. 피해자 가족의 절규를 선동꾼으로 모는 세월호 현장과 흡사하다. 언론의 무책임한 공격 속에서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버려진 존재라고 여겼다. 만약 강남의 아이들이 피해를 당했어도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했을까라는 어느 네티즌의 호소와 닿아 있다.

재난 현장에서 벌어지는 민간인들의 봉사를 정부와 엘리트 기득권자들은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시민들이 각성하고 단결할 경우 관료들의 무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각성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들의 두려움을 엘리트 패닉(elite panic)이라고 부른다. 다이빙 벨 사용이나 민간인 잠수부들의 제안이 계속 불허된 것도 엘리트 패닉의 일종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럼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설교에 사건을 담았다가 구설수에 오른 목회자들도 있고 처음부터 담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담아도 문제, 안담아도 문제인 이 기묘한 상황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내어주는지도 모른다. 카트리나 비극 이후를 주목한 레베카 솔닛의 글을 더 보자.

“전국의 교회에서 파견단을 보내 일주일간 공사에 참여하게 했다. 많은 교회에 이 참여는 의미가 깊은 경험이었다. 수 천 명의 대학생이 2~3년 동안 봄방학 대신 뉴올리언스 재건에 참여했다. 급진적인 ‘민중의 허리케인 구호기금(People’s Hurricane Relief Fund)’에서, 인맥을 활용해 정치인들을 불러 들여서 뉴올리언스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상류층 단체 ‘폭풍의 여인들(Women of the Storm)’ 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지역 조직이 생겨났다. 흑인 후손들의 권력운동에서 젊은 백인 아나키스트 집단에 이르기까지, 반체제 문화단체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2005년 8월 29일 이후 사망 선고를 받았던 도시를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에 놀라울 만큼 많은 사랑과 노동이 투입되었다.”

시민들은 각성했는데 교회는 뒷북을 치지 말자. 갈라진 민심을 통합시킨답시고 함부로 용서와 화해를 말하지 말자. 이미 기득권자가 되어버린 교회가 엘리트 패닉 상태에 빠져 섣부른 도덕 선생이나 성인군자 행세도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위로해주고,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는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정치 사회적 각성도 당연히 뒤따라야 하고.

이 비극을 어떻게 시민의 각성으로 조직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wikipedia, 미국 온라인 백과사전) ⓒ <미주뉴스앤조이>  
 

 

다이빙 벨이란?

다이빙 벨은 잠수부들이 수중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종처럼 생긴 구조물이다. 다이빙 벨을 가라앉히면 윗부분에는 공기가 남게 되는데 잠수부는 공기 주머니를 베이스 캠프로 해서 오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해가면서 수중 작업을 할 수 있다. 작년 대서양에 침몰한 배 안에 갇혔다가 사흘 만에 구조된 나이지리아 남성 구조 때도 다이빙 벨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가 개발한 다이빙 벨은 물 밖에서 잠수부에게 공기를 공급할 수 있고 작업인력 수를 늘리는 등 업그레이드 된 형태로 알려졌다. 단 물살이 세서 다이빙 벨 자체가 유실되면 안에 머물던 잠수부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길벗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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