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그리스도인의 금기인가!?
‘비판’은 그리스도인의 금기인가!?
  • 강만원
  • 승인 2014.05.08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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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한국교회의 교인들이라면 너나없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교인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그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쯤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교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은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준엄한 명령에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본 절은 분명히 그런 의미가 아닌데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허투루 해석하면서, 설령 비판할 일이 있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두 알아서 하시니까 교인들은 감히 입을 열지 말라는 뜻인양 제멋대로 곡해한다. 마치 악한 모든 일에 대해서도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깊은 영성에서 비롯된 의로운 신앙처럼 여긴다.

성경에 무지한 교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귀를 막기에 이보다 좋은 구절이 없다. 비판의 사전적 정의는 "대상의 옳고 그름을 밝히는 정당한 능력"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바른 신앙'을 알고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제멋대로 들이대면서,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마땅히 척결해야 하는 비리가 있더라도 교인들이 함부러 나서서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라고 요구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조용한 침묵이 아름다운 미덕이다. 그릇된 일을 바로잡는 행동이 세상에서는 의로운 일인지 모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주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를 소란케 만든 불의로 여지없이 정죄될 뿐이다. 무슨 일이든 구체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교회에서 목사를 비판하는 것 자체를 마치 하나님을 향한 불순한 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목회에 관한 중요한 사항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의 재정이나 일반 행정에 관한 비리조차 교인들이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순간, 그런 교인들은 불경不敬이거나 심한 경우 이단으로 매도당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교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행위는 틀림없이 사탄의 역사役事라는 허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성경에서 “비판하지 말라”라는 번역은 명백한 오역이다. 다시말해 화자, 즉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이 철저하게 왜곡된 대표적인 문장들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부터 성경은 잘잘못을 가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했던 것이 아니다. 영역본에서 정확히 번역했던 것처럼, 본래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의 ‘Do not critisize!’라고 기록하지 않고, 심판(정죄)하지 말라는 의미의 “Do not judge!” 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아도, 본 절에서 사용한 동사는 krino로서 비판뿐 아니라 심판, 판결, 비방, 정죄의 다양한 의미소들을 지닌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 말로 정확히 옮기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사용된 문맥을 주의깊게 살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즉,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본문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한 정당한 비판을 금지한 구절이 아니라, 자기 기준에 따른 개인적 판단으로 상대방을 함부러 비방, 정죄하지 말라는 문장이다.

요컨대 본문은 스스로 재판관(Judge)이 되어 다른 사람을 함부러 정죄하고 심판하지 말라는 뜻일 뿐, 교회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악행을 비판하지 말고 수수방관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악에 대해 방관하는 것은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않았을망정, 엄연히 악의 동역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 의인과 악인을 단정짓는 심판은 인간이 섣불리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죄악에 대한 바른 비판, 즉 정당한 비판은 하나님의 의를 알고 따르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바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분명히 말해야 한다.

다만, 죄가 아닌 사람을 섣불리 정죄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서 함부러 정죄하고 심판할 수 없다. 결정적인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모두가 죄성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면서도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죄인’으로 단정짓고 심판하는 영적 교만과, 죄인의 악한 행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죄는 미워하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거룩한 율법에 대해서 결코 심판하신 적이 없지만, 유대인의 율법적 행위, 이른바 ‘율법주의’의 외식에 대해서 그리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비판하셨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대의 궁중 선지자들의 교만과 위선에 대해 목숨을 걸고 비판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바른 행동이며, 선지자의 올곶은 사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주의 뜻을 따라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주께서는 타락한 종교인들의 위선을 보시고 “화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시며, 심지어 저주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뜻에 따라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비판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배역이 아니라 바르게 지키는 의로운 순종이다. 비판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의와 율법주의의 종교적인 의, 그리고 세상의 의를 분별할 수 없잖은가.

“비판하지 말라 (Do not judge.)”는 주의 말씀은 불의에 대해서 입을 닫으라는 뜻이 아니라, 입을 바르게 사용하라는 뜻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맹목적 비판, 그리고 거짓된 비방과 다른 사람을 헛되이 헐뜯는 험담은 분명히 죄악이다. 말로는 정당하게 비판한다면서 은연중에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행동은 바른 비판을 가장한 더러운 비방이다.

반면에, 사실과 정의에 바탕을 둔 정당한 비판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영적 규범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말라. 교회지도자들은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허투루 들먹이며 교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애쓰지 말고 비판을 겸손히 수용하라. 정당한 비판을 어쭙잖게 비난하려 들지 말고, 바른 비판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주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라.

교회는 교권을 장악한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교회를 사랑하는 것 또한 그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며, 원형적인 의미로 정의하면 교회는 곧 ‘성도’(에클레시아: Ekklesia)이다. 심각한 영적 퇴락에 빠져든 한국 교회의 새로운 성장과 진정한 부흥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무지에서 벗어나 주의 가르침을 오롯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 교회의 타락과 불의에 대해서 당당히 비판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주저없이 나서야 한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자. 작가. 

성균관 대학교와 프랑스 아미엥 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신의 성경을 버려라"의 저자이며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 단순한 열정,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 신이 된 예수, 루나의 예언,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예수의 역사와 신성 외 다수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아르케 처치'에서 성경강의 및 번역, 출판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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