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른이 해야 할 말
지금 어른이 해야 할 말
  • 송병주
  • 승인 2014.05.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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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1. 어린이 문학의 의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린이 문학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어린이 문학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하고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어린이 문학’처럼 될 때 세상은 참 예쁠 것 같다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 세월호를 겪는 지금의 어른들은 어린이 문학과 거리가 매우 먼 막장 드라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난히 어린의 문학의 정의가 우리를 참 슬프게 합니다.

2. 가만히 있으라? vs 가만히 있으라!

어른 전문가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아이들을 실종자로 만들었습니다. 어른 전문가들은 실종자 부모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실종자 가족들’을 ‘사망자 유가족’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제 또 어른 전문가들과 목회자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국민들에게 안내 방송을 합니다. 나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선동질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유언비어와 괴담이 유포될 수 있으니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고, 화 낸다고 해결될 것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오히려 지금은 “가만히 있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말만 하지 말고, 키보드 전사만 되지 말고, 행동하라. 고치자. 바로잡자.”해야 합니다. 그게 어른이 할 말이다. 정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제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우리가 나서마. 너희들은 그만 다쳐야 한다. 비겁한 우리 어른들이 이제 나서도록 하마”그게 어른이 할 말입니다.

   
 
   
 
3. 침묵하라 vs. 사실을 보도하라

SNS로 인해 루머가 돌며 유언비어가 유포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들은 자꾸 “침묵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침묵하면 사실과 진실이 알려질까요? 침묵하고 있으면 알아서 잘 해결될까요?” 소리지르고 떠든다고 바뀌겠느냐는 패배주의적 마음도 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 바꾸면 죽은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침묵하라는 말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입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부를 옹호만 하는 것도 매우 정치적인 것입니다. 비판하는 것을 선동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부탁하고 싶습니다. “침묵하라고 선동하지 마십시오.”

유언비어와 루머의 유포는 언론이 통제되고 사실이 왜곡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언론의 오보와 날조 그리고 언론통제는 유언비어 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SNS를 향해 “침묵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언론을 향해 “사실을 보도하라”고 해야 합니다. 그게 어른들이 하셔야 할 말입니다. 유족들을 향한 극우주의자들의 모독과 거짓을 향해서 “침묵하라”고 일갈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말입니다.

4. 누구를 구조하는 것인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세월호편을 방영하기 위해서 취재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선박과 구조 관련 전문가들과 대학교수들 대부분이 인터뷰를 거절했다는 점이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죽어 갔건만 다음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뼈를 깍는 성찰을 해야 할 상황에 여전히 어른들 끼리만 세월호를 탈출하고 있습니다.

해경도, 선박회사도, 안전행정부도, 대책본부도 모두 자기를 구출하느라 바쁜 모습입니다. 정부를 조금만 비판하면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언론과 SNS를 통해 대응합니다. 자기 구출에는 컨트롤 타워도 있고 체계적인데 아이들을 구조 하는데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질문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이 당신들의 임무입니까? 아니면 도데체 누구를 구출하는 것이 당신들의 임무입니까?

다른 누구보다 2번에 걸쳐 청와대 국가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한 안보실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아울러 자본과 관료의 부패 결탁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일본의 원전 마피아 이야기를 바다 건너 방사능 구경하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피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관료 마피아는 세월호에만 있지 않습니다.

5. 공직기강과 국민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2004년 고 김신일씨 피랍사건 때 박근혜 대통령께서 의원시절에 국회에서 한 말입니다. 이젠 이 ‘회의’를 국민들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민이 무서워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을 무서워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정권을 두려워하면 공직기강이 무너집니다. 국민을 두려워해야 공직기강이 바로 섭니다. “공직자들은 들으십시오. 대통령의 명령입니다”가 아니라 이제는 “대통령께서는 들으십시오. 국민의 명령입니다”를 말해야 합니다. 이런 엄청난 참사를 겪으면서 어른들이 해야 할 말은 이런 것입니다.

6. 쓰레기와 정치, 언론, 종교

누군가 한 말입니다. “정치는 쓰레기를 만들고, 언론은 쓰레기를 퍼 나르고, 종교는 그 쓰레기를 덮어준다.” 세월호에서 도망갈 어른은 선장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지금은 책임지고 희생할 진짜 어른이 필요합니다.

AD 6-7세기경 고대 아테네에서 정치인 겸 법률가로 활동했던 솔론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던진 ‘정의’에 대한 간단한 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 된다”

이것을 보면서 생각을 이어 봅니다. 세월호 실종자들과 사망자들의 부모가 분노해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종당한 가족도 없고, 사망한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이 분노하여 정의를 찾게 하는 세상은 ‘잔인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면 그것은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위해서만 읽었습니까? 아니면 책꽂이에 꽂아두기 위해서 사셨습니까?

   
 
   
 
7. 미안해서 쓰는 글


90세의 할머니가 혼잣말로 그러시더군요. “아마 그 배안에는 지체 높은 집 자제들이 없었나봐” 정치가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할머니, 한국이란 땅에서 1세기 가까이 살아오면서 그 어르신이 몸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었나 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말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슬픈 세상입니다. 제발 이 할머니의 말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리라 부탁합니다.

뉴욕 허드슨 강에 떠있던 비행기에서 전원 구조라는 놀라운 기적이나, 4천명이 넘는 페리오가 침몰하는 자리에 선장에게 돌아가라고 혼줄을 내며 거의 대부분을 구조한 이야기가 우리 조국의 기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생일을 보니 1997년 생들이 많더군요. 1997년… 한국에서 IMF가 시작된 해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적 부패로 고통받았던 아이들… 죽을 때에도 국가적 부패로 인해 떠나간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생업의 현장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부모 아래에서 자라온 아이들이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을 묵묵히 기다려준 아이들, 입시 지옥 아래에서 수학여행 간다고 좋아라 했던 아이들… 부모들이 더 많이 울부짖는 이유가 “너무 미안해서”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눈물나고, 그래서 비겁하게 입다물고 있기보다는 이렇게 글이라도 적어 줘야 할 것 같아서 못난 글쟁이 짓이라도 합니다.

송병주 목사 / LA 선한청지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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