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엄마, 마녀 엄마
성녀 엄마, 마녀 엄마
  • 길벗
  • 승인 2014.05.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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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길벗의 몰래 읽은 책] (3) 캘리번과 마녀

한국은 8일이 어버이 날이고 미국은 11일이 어머니날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을 당한 가정은 눈물로, 남은자들은 행복하기도 미안한 마음으로 슬픈 어버이날을 보냈다. 전쟁같은 일터지만 가족을 위해 견뎌냈던 아빠들의 희생도, 더러는 운좋게 직장을 잡았더라도 여성이기에 차별을 당한 엄마들이 가사노동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참아냈던 것도 자식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학원비 때문에 절약이 몸에 배었고, 아이들에게 많은 것은 못해 주어도 남들처럼 대학이라도 보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이것 마저도 너무 버거워 한숨 쉬던 엄마들이었다. 엄마들은 아침과 도시락 준비, 가사 노동과 힘든 생업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는데 그런 작은 행복조차도 더 이상은 누릴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슬픔은 언제쯤 가라 앉을까?

한국의 엄마들은 거의 성녀에 가깝다. 남편과 시댁을 참아내야 하고, 남편 눈치보며 친정을 도와야하고, 생존경쟁의 현실속에서 아이들을 길러야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정보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얻고야마는 성녀요 철녀다. 성녀로서 여성을 조선사회는 열녀로 칭송했고 현대사회는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칭송하면서 여성의 역할을 계속 희생의 이미지 속에 가두고 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년)는 마녀의 역사를 추적한다. 흔히 마녀사냥은 중세교회에서 저질러진 죄악으로 알고있지만 실비아는 계몽주의 이후에도 마녀사냥이 지속되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중세에서 마녀를 지배하는 악마는 멍청한 존재로 그려질 정도로 다소 귀여운 면이 있었다. 우리 민담에 나오는 혹부리 영감의 노래소리에 반해 혹을 떼어준 도깨비처럼 순진하고 잘속는 마귀의 이미지가 서구 중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악마성을 가진 마귀가 마녀를 조종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중세와 달리 근대에 들어오면서 마귀는 더욱 악랄해졌고 마녀는 악랄한 마귀의 영향을 받는 더 공포스러운 존재로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은 중세의 봉건제가 마감하고 근대로 넘어가는 자본주의의 이행기에 일어났다. 국가적 기획 차원에서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노동력을 통제하고 자본주의의 시초축적을 위해 여성을 희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본이 남성중심으로 축적되는데 방해가 되는 마녀일뿐이다. 결국 계몽주의 이후 마녀사냥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성, 국가, 교회가 저항적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었다.

예를들어 산파와 같은 여성 고유의 직업을 남성 의사에게 넘김으로써 여성의 자급수단을 박탈했고, 고소당한 마녀로 하여금 다른 마녀를 고발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단결을 막았다. 마녀사냥이 끝날 즈음에 바람직한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이고, 알뜰하고, 말이 적고, 항상 열심히 일하고, 순결한 이상적 여성이자 아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캘리번은 셰익스피어의 <태풍>에 나오는 원주민 반란자의 이름으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제3세계의 노동자를 설명하기 위해 은유로 쓰였다. 캘리번과 무임금 노동을 감수해야하는 여성(마녀)이 자본주의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붙여진 책제목이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가 공유하는 어머니상, 여성상은 자본주의 정착과정에서 생겨난 조작된 이미지였던 셈이다.

기베슈텔의 <신의 네여자>(여성신문사, 2004년)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00여년 동안 서구의 지배문화로 군림해온 가톨릭은 여성의 정체성을 네 가지로 조작한다. 육체적 욕망을 가진 창녀와 제거해야할 마녀, 순종적인 성녀와 교회가 가장 좋아했던 멍청한 바보 여자들이 그것인데 여기서 성녀도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성녀는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으며 그들에게 적당히 좋은 종교적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사제들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진실이 밝혀진 이상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성녀의 이미지로만 머물기에는 아깝다. 세상은 발언권을 가진 여성들을 마녀로,드센 여자로 치부하지만 세월호 희생을 분노로 승화시킨 것은 ‘마녀’들의 힘이다. 한국의 착한 엄마들도 이제는 성녀 엄마 이미지를 벗어날 때가 됐다. 아이들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고, 불의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고, 공부말고도 세상을 재미있게 살 수있는 방법이 많다고 가르치고, “엄마는 시위에 나갈테니 밥은 혼자서 차려먹어!”라는 쪽지를 식탁 위에 써놓을 수있는 마녀같은 엄마들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발전하지 않을까?

여성들을 조작된 여성성에 묶어둠으로써 지배권력이 얻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면 이제 성녀 엄마 이미지를 벗고 마녀 엄마가 되는 것도 권장해 볼만하다.
“이제 저 세상에서는 학원 가지말고 마음껏 놀아!”라는 희생자 엄마의 절규가 귓가에 계속 머문다.

*시초축적이란? 자본의 '시초축적'( 始初蓄積 , die ursprünglicheAkkumulation) 또는 '원시적축적'이란, 기존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의 출발점이 되는 최초의 자본의 축적과정을 가리킨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정착되려면 최초의 자본이 필요한데, 이러한 최초의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자본의 '시초축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길벗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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