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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

기사승인 2015.04.08  07: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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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장애와 죄의 관계에 대하여

   
▲ 이준수 목사 ⓒ <뉴스 M>

<최근 한국과 미주한인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인권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계 인사들 중엔 “질병과 장애는 죄의 대가이며 귀신들린 현상”이라는 인식을 가지신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성령체험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장애와 죄를 연관시킨다고는 하지만, 평생 질병이나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나 그 가족들에겐 참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 평화를 선포해야할 목회자들이 여전히 장애와 질병에 대한 단편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로 우리 장애인들의 재활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장애인 사역자로서 부족하지만, ‘장애와 질병, 그리고 죄와의 관계’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요한복음 9장에 기록된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을 치유해주신 사건을 주제로 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데 어떤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 한 명과 마주쳤다. 그 시각장애인은 앞도 못 볼 뿐 아니라 옷도 아주 허름하게 입은 채 지팡이로 앞을 더듬더듬 짚으며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그 시각장애인이 하도 딱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더듬더듬 걸어가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여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저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질병이나 장애 등 인간이 겪는 고난의 원인을 인과론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하나님께 대한 죄의 결과라고 생각해왔다. 구약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세 친구가 바로 이런 인과론의 대표자들일 것이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 또한 육신의 질병을 앓으면 죄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하고 질병을 죄에 대한 형벌로 곧장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지 질병과 관계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 현재 성도들을 괴롭히는 질병과 고통, 장애와 불행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도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 성경 전체를 통해 보면 질병과 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죄에 대한 징벌로 병을 얻게 되고, 그래서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과 병고의 상태로부터 구원해준다는 것은 늘 동의어로 쓰인다. 가령 시편 103:3에 보면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하여, 한 사건을 죄 사함과 병 고침의 두 가지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죄 사함에 대한 비유들은 대부분 시편 103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비유들을 보면 죄 사함과 병 고침이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고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장애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다. 위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인식처럼, 종종 장애나 질병은 개인의 죄에 대한 징벌로 이해되기도 했고 또 그 부모나 조상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결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전통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하신다. 시각장애인과 관련하여 그의 눈이 멀게 된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선포하신다. 즉,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잘못 때문도 아니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처지에 결코 실망하지 말고 더욱 더 열심히 살라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주시고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몸 불편한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너희와 똑같은 인간이니 그를 차별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과 똑같이 평등하게 대하라’는 인간 존엄의 정신을 심어 주고 계시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 시각장애인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셔서, 그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시용하셨다. 이렇게 함으로 시각장애인은 빛을 보게 되었고, 빛을 봄으로써 예수를 바로 이해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예수를 증거하는 생명의 도구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의미 있게 사용되었다고 요한복음 9장은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들을 볼 때 무조건 그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는 원시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죄가 고난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1대 1로 상응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병이나 심신의 장애, 자연재해 등 인간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성경은 ‘원죄’의 결과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런 결과를 ‘De-Form’이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어주신 형상(Imago Dei)의 모습이 망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라는 의미다. 대개의 경우 De-Form은 인간의 내면(영혼)에 생겨났고, 그 결과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음도 없어졌다. 어떤 경우엔 그 De-Form이 인간의 외면적 모습으로도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질병이요 장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는 일차적으로 ‘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죄란 어느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actual sin)이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에게 공통으로 책임이 있는 원죄, 혹은 구조적인 죄(original and structural sin)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애는 개인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기보다는 인류 전체가 함께 지은 원죄의 결과인 것이다. 장애란 인간에게 원죄가 있음을, 그 결과 온 인류가 함께 벌을 받고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가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징표라 할 수 있다. 즉 장애의 책임이 장애인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자연재해 현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봄,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온 일본의 지진, 쓰나미 사태 역시 한국의 일부 목회자들의 말대로 일본인들이 예수를 안 믿어 받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받을 불순종과 죄의 대가를 그들이 대표적으로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 또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이유 없고 무조건적인 형벌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이 창조하신 자연세계를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무한정 더럽히고 훼손한 데서 초래된 결과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자연재해를 당한 사람들을 판단, 정죄하지 말고, 나의 죄로 인하여 그들이 고통당함을 바르게 인식한 채 진실한 회개와 함께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섬김과 나눔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이 인간의 개별적인 의지나 행위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의 원죄로 말미암아 고난과 고통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죄적 한계 속에서도 우리를 위로하는 ‘기쁜 소식’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앙 안에서는 장애라는 고난조차도 ‘숨겨진 축복이요 은혜’라는 것이다. 바로 고난을 통해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진정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르게 되며, 더 나아가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애인들도 "왜 나만?”이라고 괴로워하거나 나의 특정한 죄 때문에 장애나 질병이 생긴 것이라고 좌절하거나 죄의식에 빠지지 말고, 비록 육신적으로는 불편함을 입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생명의 그릇,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질병이나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섣불리 죄와 직결시켜 판단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그 결과 고난을 받는 것이 명백하다면 그에게 회개를 권고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키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장애인들을 바라보며 가져야 할 자세는 그들이 우리를 대표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선을 베푸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나의 책임의 일부를 갚아가는 것이다. 더 큰 장애는 나의 내면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 장애와 고난을 주시고, 또 그들을 우리 가까이 있게 한 이유요 그분의 거룩하신 섭리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우리가 지녀야할 태도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준수 목사 /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 미주 밀알&세계 편집담당>

이준수 newsm@n314.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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