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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가 된 선교사와 한국 정치

기사승인 2017.03.28  0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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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대에 소통이란 무엇인가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젊은이는 약물과 마약에 빠져 록밴드 활동을 하면서 세상과 맞섰다. 그러던 중 17살 나이에 샌디애고에서 알(Al) 그래이엄과 수(Sue) 그레이엄 선교사를 만나 회심을 경험한다. 18살 이른 나이에 이들의 딸인 케런과 결혼한 후 무디 성서연구소에서 해외선교로 학위를 취득한 그는 언어습득의 재능을 인정받아 1980년 아마존 유역의 피다한 족 선교사로 파송된다. 하지만 1985년 그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극적인 경험을 한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다니엘 에버렛( Daniel Everett)의 이야기다. 선교사의 피를 이어받은 아내와의 이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에버렛은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이 신앙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채 피다한 언어 연구를 계속해 노암 촘스키의 '보편 문법'에 반대되는 이론을 세상에 내어 놓아 주목을 받았다.

그 5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피다한 족을 선교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피다한 말의 독특성에 에버렛은 놀라게 된다. 그들의 언어는 모음 세 개 자음 여덟 개로 음소가 아주 적다. 말 이외에도 휘파람 등을 통하여 상대방과 소통한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미래형 동사가 없고 초월이나 진리를 의미하는 단어도 없다. 에버렛도 초기에는 성경을 피다한 말로 번역하겠다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생활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에버렛의 제자가 피다한 언어 연구를 위해 마을을 방문한 뒤 돌아와서 그들에게도 창조나 초월의 단어가 있다고 에버렛 앞에서 호들갑을 떤다. 그 흔한 창조설화 하나 없는 부족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제자가 얻어낸 성과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자가 녹음해 온 내용을 들어 본 에버렛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세상의 처음에 바나나와 빠빠야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결국 에버렛은 모든 언어에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문법이 있고 아주 적은 경우의 변수가 있을 뿐이라는 촘스키의 보편 문법에 반대해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화의 영향력이라는 점을 주장하면서 언어학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단순한 교훈 한 가지를 깨우쳤다. 내가 그토록 신봉해 온 영적인 복음에 대한 나의 확신, 세상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감흥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진리에 대한 나의 확신은 모두 엉터리였다는 것 말이다.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관만으로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관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것이다. "

-다니엘 에버렛,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꾸리에, 2013년), 469쪽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그런데 상대방의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소통은 강요가 된다. 에버렛이 기독교 신앙을 버리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어의 소통 communicate는 소통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소통이 안 되는 상태를 파문(excommunicate)이라 부른다. 진리 또는 보편을 미리 상정해 놓은 상태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곧 퇴출을 의미한다. 소통이 권력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 각 정당마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 이들의 연설에는 안보, 경제, 소통, 화합 등 보편의 언어가 자리잡고 있다. 문법에도 보편법칙이 없는데 이들 개념에 보편적 진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개념이 옳은 것이라고 상대방을 윽박지른다. 이 과정에서 작은 '문법', 거친 '어휘'들은 실종된다. 북한만 압박하면 안보가 되고, 재벌의 처지를 고려해주어야 경제가 안정되고, 상대방을 포용해야 화합이 된다는 수없이 반복된 시행착오가 선거 때만 되면 보편의 진리처럼 둔갑한다.

그러나 작은 문법과 언어가 한국 사회를 발전시켜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을 위해, 이념 대립의 피해자들을 위해,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작은 자들의 연대가 세상을 조금씩 앞당겼다.  '타도', '쟁취' 등의 거친 언어가 한국 사회를 견인해 왔던 사실을 벌써 잊은 듯 하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소수였던 '우리'들은 벌써 주류가 된 냥 행세하면서 보편을 지향하고 있다. 예전 보수정당에서나 나올 법한 공약들이 '우리 편'에서 쏟아져도 다된 밥에 재뿌리게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 한다. 조금만 문제제기를 해도 열성 지지자들의 저주가 쏟아진다. 정권이 바뀌는 것 말고 여타의 징조는 좋지 않다.

투표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편에게 조차 외면당했던 작은 자들을 향한 연대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누가 되든 적어도 지난 9년간의 인물들보다는 나은 인물이 되지 않겠는가? 그 상태에 만족하여 머물지 말고 작은 언어(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을 때다.   

노암 촘스키는 언어학자이면서 왜 그리 작은 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데 앞장 서고 있을까?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보편 문법'의 개념에 모든 것이 함몰되지 않도록 작은 언어들을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런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피다한 처럼 보편의 질서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야 한국 사회가 확실하게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  MIT의 두뇌인지과학부 연구원들이 피다한을 방문하여 연구한 결과 MIT의 기존 연구 대상 중 피다한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세상 어느 민족 어느 부족보다 웃는 시간이 가장 길었다. 모두가 적폐청산을 외치고 새 시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때 과연 우리의 웃는 시간은 늘어날 수 있을까? 


김기대 편집장 / <NEWS M>

김기대 gilbert@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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