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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기억 재구성한 미국, 세월호 잊자는 한국

기사승인 2017.04.18  14: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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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기행 ①] 워싱턴 D.C.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서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기념비 ⓒ 지유석

베트남 전쟁은 미국으로선 떠올리기 싫은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 지위를 얻은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악의 제국' 소련의 팽창 저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미소 양국은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미국은 소련과 군사적 충돌은 최대한 자제했다. 단, 미국은 사활적 이해가 걸리지 않은 지역에 한해 군사력을 사용했다.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1964년부터 본격 개입한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반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시종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주월 미군 총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를 비롯한 군부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전쟁 양상은 미국의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국내 여론의 반대도 거셌다. 이 시기 미국은 반전 여론이 거셌고, 전쟁을 둘러싼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립도 심각했다.

기본적으로 베트남 전쟁은 민족주의와 프랑스, 미국 등 외세에 기생한 부패 반공주의 세력 사이의 내전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은 싹둑 잘라낸 채 냉전적 대립 구도로만 접근했다. 결국, 이 같은 오판이 참담한 패배를 불러온 셈이었다.

현지시간 6일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이날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기념비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지유석
현지시간 6일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이날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기념비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지유석

워싱턴D.C.엔 베트남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엔 전물장병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기자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6일 이곳을 찾았다. 이날 워싱턴D.C.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추모객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기념비 아래엔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과 기물들이 눈에 띄었다.

미국은 1973년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미국 정부로서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하루빨리 잊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과 전개양상, 전쟁의 성격과는 별개로 베트남에서 꽃다운 청춘을 바친 이들을 위한 공간은 마련해 놓았다. 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44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미국인들은 아직도 베트남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한다.

'세월호 많이 우려먹었다'는 보수 정당 대선후보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놀라운 발언이 불거져 나왔다. 발언의 진원지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다. 홍 후보는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가 대개혁 비전 선포 기자회견에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세월호 사건을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우려먹었냐?"
"세월호 갖고 3년 해 먹었으면 됐지 이제 더이상은 안된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지난 3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막말을 일삼아 왔다.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매도한 김재원 의원이나 "(인양비용이) 1000억 원 정도 든다는데, 인양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 김진태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홍 후보의 발언은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올해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는 데다 지난 3월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진상규명 목소리는 날로 높아만 가는 상황이다. 따라서 홍 후보의 인식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홍 후보만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한동안 우리 사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세월호 참사를 불편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볼 때,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이 같은 목소리가 정권 책임론으로 번지는 걸 막고자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인식은 널리 확산돼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따위의 극우 집단을 동원해 유가족을 모욕했고, 보수 언론은 정부 입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문제는 세월호 물타기 전략이 일정 수준 정권의 의도대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한동안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야기만 꺼내면 '그만하자', '아직도 세월호냐'고 고개를 돌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지시간 6일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이날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기념비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지유석
현지시간 6일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이날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기념비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지유석
현지시간 6일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이날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기념비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지유석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재구성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대표적인 예다. 콜린 파월은 아들 부시 행정부가 기획 중이던 이라크 전쟁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로 인해 파월은 온건파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콘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등 이른바 '불카누스'로 불리는 부시 행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과거 이력을 연구한 제임스 만은 콜린 파월이 온건파와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만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담은 책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에서 파월의 성향을 아래와 같이 풀이했다.

"사실 파월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결코 비둘기파(온건파를 지칭하는 낱말 - 글쓴이)인 적이 없었다. (중략) 파월은 자신의 경력을 통틀어 최소한 다른 불카누스들만큼 강한 군사력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온건파로 이미지를 굳히게 한 파월의 '신중함'은 다만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고 피를 흘리며 비씬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파월에게 가장 중요한 이론과 근거는 궁극적으로 실용주의이지 평화주의가 아니었다. 파월은 베트남전과 같은 소모전을 피함으로써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이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워싱턴 D.C. 한복판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이 베트남전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위에 적은 파월 전 국무장관은 베트남전의 기억을 재구성해 자신만의 군사전략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반면 세월호 참사는 3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 이 같은 우여곡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월호 추모공원을 둘러싼 갈등이 특히 그렇다. <오마이뉴스>, <주간경향> 등 복수의 언론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추모공원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화랑공원에 추모공원 조성을 희망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우리 사회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가? 정권은 책임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덮으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않았던가?"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기초교양학부 김응교 교수는 자신의 책 <곁으로>에 이렇게 적었다.

"기억하는 작업(memory work)에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집단의 문제가 개입된다. 어떤 목적을 위해 '기억'하려는 가에는 정치적 판단과 집단적 판단이 개입된다."

미국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1991년부터 미국은 베트남전의 기억을 잊고 중동을 향해 침략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과거, 특히 잊고 싶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분명 세월호 참사 3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김응교 교수의 지적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세월호를 기억하려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대해 정치적 판단과 집단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안전사회로 가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사고사회로 남느냐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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