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합격발표를 바라보며
하버드대 합격발표를 바라보며
  • 신순규
  • 승인 2017.04.22 0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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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의 [세상사는 이야기]

매년 3월 말이 되면 많은 미국 학생들이 불안하게 이메일 하나를 기다린다. 혹시 이메일이 무슨 이유로든지 늦게 배달될까 염려하는 학생들은 웹사이트를 계속 체크할 것이다. 올해도 약 3만8000명의 12학년 학생이 3월 30일을 손꼽아 기다렸으리라. 바로 그날이 하버드대학 2021년 클래스에 응시한 그들의 합격 여부를 통보받는 날이었으니까.


물론 이날을 학생들만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도, 또 꽤 많은 학교 선생님들과 나처럼 학생들을 면접하고 그들을 위해 면접 리포트를 써낸 졸업생들도 고대하는 날일 것이다.

올해도 그날은 왔고, 오직 1118명의 학생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들의 대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좋은 소식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중순 수시 합격 통보를 받은 938명과 함께 2056명이 2021년 클래스에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합격률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올해 3만9506명이 지원해 최고였던 작년 기록(3만9041명)을 경신했다. 반면 합격자 수는 약 2.5% 줄었다. 그래서 합격률이 작년 5.4%에서 올해 5.2%로 내려갔다. 합격률이 2004년(10.4%)의 절반까지 낮아진 셈이다.

4월 중순쯤 되면 지역별 통계가 나오고, 내가 속해 있는 북뉴저지 지역의 결과가 나에게도 전해진다. 교육열 높은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서 그런지 올해도 6.0%의 합격률로 16명의 학생이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작년(6.6%)보다는 이 지역 합격률 역시 낮아졌다.

총합격생 중 22.2%가 아시아인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미국 전체 인구 중 약 5.6%가 아시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결과는 아시안들의 비교적 높은 교육열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 더욱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통계에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안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미국에서 성장하는 아시안이다. 많은 이들이 이 아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기대를 한다. 수학을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 않거나, 성적이 우수하지 않거나, 악기나 골프·테니스 등 특별활동으로 큰 상을 받지 못하는 아시안 아이들을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버드대와 MIT에서 공부했다는 배경이 그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근래에 알았다. 학교 성적이 내려간 것을 본 아들 데이비드가 울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아빠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 못 될 것 같다고. 열한 살 난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나는 아이들에게 한 번도 아빠가 다녔던 학교에 갈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엔 좋은 학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하고 싶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학교를 골라 응시할 것을 제안했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쳤다.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 즉 그 공부를 통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학교 성적이, 즉 시험지나 프로젝트 그리고 숙제에 적혀지는 숫자의 의미가 가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숫자가 그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톱 학교 교육이 커리어 시작에 도움이 되고, 선택범위를 넓혀줄 수는 있어도 행복이나 의미 있는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인격이나 행복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을지라도 아이들의 인간미와 자존감을 손상시키면서까지 그들에게 기름진 스테이크와 값비싼 포도주와 함께하는 삶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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