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잡상인을 닮은 사드 장사
시외버스 잡상인을 닮은 사드 장사
  • 김기대
  • 승인 2017.04.29 10: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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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북풍의 이면을 보면

1970~80년대 시외버스 정류장 풍경. 막 떠나려는 시외버스에 양복을 입은 점잖은 사람이 급하게 올라타 승객들에게 번호표를 돌린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중국 무슨 연구소에서 만든 옥편일 때도 있고, 세계 유명 교향악단의 클래식 음악을 모두 모아 놓은 CD 전집일 때도 있다. 그런데 고속버스도 못타고 시외버스를 탄 승객들에게는 부담되는 가격이다. 물건을 팔던 사람은 당첨 번호라며 갑자기 몇 개의 번호를 부른다. 그리고 당첨된 사람들에게는 1/10 가격 쯤으로 ‘모신다’며 물건을 떠 안긴다. 당첨된 사람은 얼떨결에 물건의 품질을 확인하지 못하고 덜컥 구입했다가 집에가서 물건을 뜯어보고 난 뒤에야 낭패를 당한 사실을 깨닫는다.

미군은 한국 시간으로 지난  26일 새벽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전격 배치한 데 이어 27일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 해리 해리스 사령관은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서 성주에 배치된 사드가 "곧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깊은 밤에 전격 배치된 사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것은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며, 지역의 긴장 형세를 한층 자극시키는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전했다. 사드 배치를 차기 정부와 의논하겠다던 미 국무부의 발언은 오간 데 없어졌다.

이어 사드 비용 10억불을 한국에 부담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사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5차 토론회에서 문재인(차기 정부에서 재논의), 심상정 (반대),  절차상 문제제기(안철수), 유승민 홍준표(찬성 그러나 10억불에 대해서는 반대)로 의견이 갈렸다. 10억불 설에 놀란 한국의 국방부는 미국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는 합의서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오랜 안보 공포에 길들어져 있는 사람들은 사드가 북한의 공격을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근거를 제시해도 사드의 효능을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10억불 앞에서 사드의 반대 여론이 좀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이런 동향을 파악 못하지 않을 터인데 무리수를 둔 것은 한국의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이유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메이드 인 사우스 코리아(made in South Korea) 북풍은 효력이 다했으니 미국이 북풍 드라마를 직접 '제작 감독'하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10억불'을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 온 뒤 결국에는 10억불을 '면제'(?)해주는 것으로 한국 정부가 사드를 이견 없이 받도록 하는 높지 않은 단수의 판매전략이다.

바가지 요금을 책정한 뒤 슬쩍 요금을 깎아주면서 불량품의 품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시외버스 정류장의 장사치 같은 전략이다. 미국의 방어망에 당첨된 사실에 기뻐한 나머지 물건의 품질을 확인도 안 해보고 배치를 앞당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며칠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배치를 결정한 사람들은 정류장 장돌뱅이의 바람잡이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번에 나도 운좋게 당첨되어서 횡재를 했다며 구매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바람을 넣는다. 혹은 커미션을 받았을 법한 운전기사는 잡상인에게 빨리 내리라며 재촉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홈쇼핑 채널의 한정판매와 같은 짜고치는 상술이다.  

이런 개입의 이면을 잘 읽어보면 초강대국 미국도 한국의 차기 정권을 의식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하라는 대로 다하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호시절'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기 때문에 손쉬운 박근혜 정부의 하수인들과 서둘러 일을 처리하고 있다.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한창일 때 한국 사회를 분석하던 개념 중 하나였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한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시들었던 사회구성체 논쟁 중 '신식민지'라는 용어가 다시금 생각났던 지난 9년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였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연기하더니 한일 군사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열어 놓았다.

한국의 외교 현실상 미국이 거스를 수 없는 막대한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을 미국이 쥐락펴락하도록 허용한 것은 지난 9년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막무가내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결례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하여 애썼지만 이명박 박근혜는 미국 바지춤만 잡고 있으면 안전이 보장된다는 굴욕적 자세로 대한민국을 주인 허락없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미국의 사랑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9년 세월은 야권 정치인들까지 오염시켜 이른바 '안보 표심'을 의식해 미국의 요구 앞에 작아지게 만들었다. 미국은 차기 정권에 따라 사드 배치가 난항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고 있는데도 우리는 너무 길들어져 버렸다.

2002년 6월 모두가 월드컵 거리 응원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즈음 거리로 나왔던 그들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위하여 촛불을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을 초월해  연대한 첫 시위가 되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도 촛불 집회에 함께 했고 이회창 후보 조차 발을 들여 놓지는 못했지만 촛불 언저리까지 왔었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만족스럽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유감을 표명했다.

이 촛불 집회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미국과 미군 당국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변화되었다. 사드 배치 철회도 이때를 기억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상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상품이 우리 집에 필요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횡재했다며 받아온 불량 CD는 7,80년대 비싸게 구입한 CD플레이어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결국 속아서 구매한 멍청한 남편(아내)에게 화를 퍼붓다가 가정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품 판매 전략에 한반도 평화를 맡길 것인가? 노무현 후보는 미선 효순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대통령이 되었다. 반미 분위기에 놀란 이회창도 따라 했지만 쓴소리만 들었다. 시민은 누가 진심인지 아닌지를 안다. 사드 배치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다. 겁먹지 마시라. 누가 당선될지 모르지만 그들도 당신을 두려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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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렙 2017-05-01 10:50:20
1조, 본전도 안되는 가격이거든요
인간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칼렙 2017-05-01 10:49:17
1조, 본전도 안되는 가격이거든요
인간들이 양심이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