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배워라
다시 한 번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배워라
  • 지유석
  • 승인 2017.05.15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품격 있는 보수, 우리 사회 귀감으로 손색없다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 기장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보다 설리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배워라.”

올해 2월20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주제였다. 진행자인 손석희 앵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을 소개하면서 “진짜 보수란 희생하며 책임지며 그리하여 끝내 지켜내는 것, 굳이 유모차까지 일부러 끌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우리 나이로 치자면 여든 여덟의 보수주의자가 보여주는 보수의 품격”이라고 요약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단 보수진영에게만 귀감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의 태도는 새 대통령을 맞이한 지금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주인공 체슬리 ‘설리’ 셀렌버거를 무조건 영웅으로 치켜세우지 않는다. 그보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설리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 연작 1부인 <아버지의 깃발>에서도 똑같은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이오지마섬 상륙작전을 마치고 쓰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은 세 명의 미군 병사 존 닥 브래들리, 래니 개그넌, 아이라 헤이즈의 내면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응시한다. 

<AP통신> 소속 종군기자 조 로젠탈은 세 명의 병사들이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찍어 본국에 보낸다. 전쟁 비용 부담과 여론악화에 고민하던 미국 정부는 이 사진 한 장에 반색한다. 정부는 세 명의 병사를 앞세워 대대적인 전채 판매 선전전을 벌인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언론도 이들을 영웅으로 미화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오지마에서 겪었던 전쟁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특히 아이라 헤이즈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연일 술에 의지하다 상부의 눈밖에 나고야 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병사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미국 정부가 전쟁으로 괴로워하는 병사들의 아픔을 보듬기 보다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걸 은연 중에 비판한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가 꾸린 조사단은 사고기 조종사인 설리 기장의 판단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 더 의존한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했던 당시 라 과르디아 공항에 회항하기에 충분한 연료가 한쪽 엔진에 남아 있었다는 엔지니어의 증언이 나온다. 이러자 설리 기장은 자신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혼란에 휩싸인다. 그러나 정부 조사단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인적 요소’를 배제했음을 입증하며 비로소 안도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를 통해 미 정부 조사단이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설리 기장을 강도 높게 추궁한 건 아니었는지 되묻는다. 

오바마에게 날 세운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07년작 <아버지의 깃발>에서는 미국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군 병사를 이용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꼬집는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는 물론 온세계가 인정하는 보수주의자다. 보수주의자로서 그의 진면모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했던 2012년 대선에서 드러났다. 그해 8월 그는 공화당 밋 롬니 후보 유세에 깜작 등장했다. 그는 이때 빈 의자를 들고 나와 마치 오바마가 실제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는 걸 비꼰 퍼포먼스였다. 그는 오바마를 향해 "완전히 미쳤다"며 날을 세웠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소통의 달인’이라는 별명답게 바로 다음 날 자신의 트위터에 ‘자리 임자 있음’이란 사진을 올리는 한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열렬한 팬이라고 선언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16년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 보수 정치권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보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때가 많았다. <아버지의 깃발>이 대표적이다. 다른 예는 많다. 그는 미 연방수사국(FBI) 초대 국장 존 에드거 후버의 일대기를 그린 <J 에드가>에서는 후버를 부하의 공을 가로챈 인물로 그린다. 더구나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후버의 동성애 성향과 여성 콤플렉스를 여과 없이 그려낸다. 만약 박근혜 전 정권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집권했던 지난 9년 동안 최고 권력자와 집권 여당은 국민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압박했다. 보수에 속해 있는 국민들 역시 보수 정권에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 

지난 주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이했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던 박근혜씨를 쫓아내고 맞이한 대통령이기에 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자행된 온갖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임기를 마친 뒤 평온한 생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새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하고 싶다. 

그러나 과도한 지지는 오히려 독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씨가 몰락한 이유 가운데 으뜸은 본인의 함량미달이었고 버금이 맹신적인 지지자의 존재 때문이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재조사, 검찰 개혁, 대국민 소통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14일 아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는 한편, 정부 대응을 분단위로 공개했다. 또 스승의 날인 15일엔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됐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고 김초원, 이지혜 교사에 대해 순직을 인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전 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반면 옥의 티가 드러나기도 했다. 박형철 변호사의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인선이 그것이다. 박 비서관은 갑을오토텍 사측을 대리한 이력이 있었고, 그래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는 성명까지 내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데 반응이 의외다. 귀족노조니 강성노조니 하며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몇몇 언론에서 대통령이 밥을 ‘퍼서’ 먹었다는 표현이나 대통령 부인을 ‘씨’라고 한 호칭을 쓰자 반발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런 일들의 기저엔 ‘새 대통령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계심리가 깔려 있다는 판단이다. 

새 대통령의 개혁조치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완전무결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때론 실수를 할때도 있고, 특정한 사안에 인식부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해서 바로잡는 건 언론과 국민이 해야할 몫이다. 물론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렇기에 ‘새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경계심리를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을 보면 정상적인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순탄하게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은 귀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인 묵자는 이렇게 적었다.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다.”

- 묵자 <비공>편 

‘사람을 거울 삼으라’는 가르침을 풀이하면 본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아 본 받으라는 말이다. 새 대통령을 맞이한 지금,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국민이나 반대편에 선 국민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본 받았으면 좋겠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며 때론 품격 넘치는 그의 태도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