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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간호사와의 사랑을 추억하는 쇼아 감독

기사승인 2017.06.10  11: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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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드 란츠만 감독의 '네이팜' 칸 영화제 출품

홀로코스트에 대한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 털어서 당연 압권은 쇼아(Shoah,히브리어로 '절멸'을 의미). 9시간이 넘는 이 장편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클로드 란츠만이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나는 왜 허세를 부리면서까지 북한에 갔나 (Why I bluffed my way into North Korea)'라는 기사를 통해 올해 91세인 란츠만을 재조명했다.

90이 넘은 노감독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2017년 칸 영화제에 출품했던 '네이팜탄(Napalm)'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3만 2천 톤이 투하된 것으로 알려진 네이팜탄은 3000℃의 고열을 내면서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들어, 사람을 타 죽게 하거나 질식하여 죽게 한다. 그래서 한국 전쟁 당시 작전 명도 '교살작전(operation strangle)'이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한국 전쟁 당시 북한 지역이 입은 폭격 피해(당시 40만 인구의 평양에 48만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도 소개하지만 1955년 북한을 방문했다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을 추억한다.

란츠만은 2차 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10대 유격대원이었다. 터널에서 나오는 나치 수송차량을 매복했다가 공격하거나 기차로 도착하는 낯선 이에게서 탄약이 든 가방을 받아온다든가 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 후에 그는 동독과 러시아, 중공 등 공산권 국가들을 방문했다.

북한 방문 중 건강에 이상이 온 그에게 김금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간호사가 비타민제를 주사하기 위해 매일 호텔로 왔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간호사를 침대에 데려 가는 일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전쟁에서의 폭탄 세례 이후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북한에서 경험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소환한다. 

다큐멘터리 '네이팜'의 장면

 

​간호사의 접근이 기획된 것이 아니었냐는 가디언 기자의 질문에 란츠만은 이렇게 답한다.

"불가능하다. 우리가 포옹하기 시작했을 때  서로 미친 듯이 키스했는데 그녀는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기획적 접근) 불가능하다.” 

(란츠만은 질문을 한 기자에게 '영국적인 질문'이라고 농을 던졌지만 실제로 매우 한국적 질문이다. 북한에 다녀오면 성접대를 받아 모두가 친북인사가 된다는 낭설이 아직 받아들여지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란츠만은 지난 2016년 태권도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그래서 가디언의 기사 제목에 '허세bluff'가 들어간 것 같다)로 평양을 다시 방문해 옛사랑의 흔적들을 찾아 간다. 하지만 일부러 그 여성을 수소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랑은 그냥 사랑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이 인터뷰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에 따르면 "당시 (북한에서는)형제국가 (중국, 월남, 동구권 등) 인민 사이의 혼인은 가능했지만 다른 나라 사람과의 혼인은 철저하게 불허되었던 시기"였다.

쏘련만 해도, 스딸린 시절에 금지됐던 외국인과의 결혼의 길은 그 사망 직후에 다시 열렸죠. 그런데 공화국 같으면 1960년대 "주체화" 과정에서는 그런 결혼들을 많이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결혼등록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이미 등록됐다면 외국 여성과 같이 사는 남성에게 지방 오지에서의 직장 배정시키고 괴롭히고 이혼 강요도 하고....당국에서 외국 국가들의 잠재적인 정보원이 조선 영토에서 정주해서 사는 걸 피했던 모양인데, 좌우간 국권이 인권보다 우선시된 셈이죠. 20세기 후반, 분단 당한 반도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월경적인 사랑은 늘 있었죠. 비록 눈에 띄지 않아도요. 저도 김대(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하신 선배님들이나 1980년대 공화국에서 통역 등으로 근무한 쏘련 사람들로부터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입니다. 아무리 인권이 국권에 눌려 있어도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죠. (박노자 교수 페이스북)

 

아무튼 맺어 질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란츠만 감독은 지난 해 다시 평양을 찾았다.  란츠만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연인이었던 시몬 드 보봐르와의 사랑을 자서전 '패터고니아의 토끼 (The Patagonian Hare)'에 묘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녀에게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시간이 아까웠던 그녀가 “무슨 영화?”라고 묻자 란츠만은 “아무 영화나!”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함께 밤을 보낸 다음 란츠만은 이스라엘로 떠났다. 그리고 한바탕 편지가 오고가는 소동과 바다의 거센 풍랑 끝에 그가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녀의 눈과 팔, 그리고 그녀의 입과 그녀의 손이 마치 내 몸을 인식하기라도 하는 양 내 몸위를 움직였고 그렇게 떨리는 포옹으로 우리의 재회는 이루어졌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었고 오랜 시간을 두고 배우며 이루어진 사랑이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이의 관계는 지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이었다. (2012년 '옵저버'와의 인터뷰 중에서)

시몬 드 보봐르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김금선 간호사도 북한의 평균 수명(2015년 기준 여성 평균수명 73.7세)을 감안하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란츠만은 이제 혼자 남아 옛사랑을 추억하며 한 명은 자서전에 담았고 한 명은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필름에 담았다. 사랑을 추억하는 그만의 방법, 독특하고 아름답다. 

김기대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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