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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법정 웃음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기사승인 2017.06.14  14: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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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이 되지 못한 기계, 박근혜의 웃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와 재판 증인으로 나온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날 선 공방 중에 웃음을 보였다고 모든 매체들이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유 전 장관과 박근혜 피고측 유영하 변호사는 승마협회 비리 관련 공방 중 유 전 장관이 같은 내용을 묻는 유 변호사에게 증인 신문 사항이 적힌 종이를 달라고 했고, 유 변호사는 이에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 전 장관 역시 “나한테 큰소리치느냐”라고 반응하자 유 변호사는 “반말하지 말라”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박 전 대통령은 웃음을 터뜨렸다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매체들은 박근혜의 웃음이  “현실을 외면해 충격을 완화하려는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일제히 실었다. 과연 그럴까?

목사라는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일부 코미디언들에게 웃음은 복음을 능가하는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속담에도 웃으면 복이 온다든가 일노일노 일소일소(一怒一老一笑一少)-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웃음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철학에서 웃음은 그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은 수도 생활을 방해하는 악마의 유혹이다. 웃음의 의미를 밝힌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읽다가 수도사들이 죽어가다가 마침내 수도원 서고가 모두 불타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이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희극론은 영화에 따르면 이 때 불탔다. “철학이나 정치 또는 시에서 예외적 인물(즉 천재)들은 눈에 띄게 우울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서 이미 웃음은 진리와는 먼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근대 철학자 중 웃음을 철학적 주제로 삼은 이는 앙리 베르그송이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변화하는 외부 세계에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는 일은 무척 피곤한 작업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응하기 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이 생겨난다. 즉 생명이 기계적 작업이 될 때 웃음이 만들어진다. 코미디 연기에서 관객들이 뻔히 예측하는 상황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는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넘어진 코미디언이 일어설 때 머리 높이에 부딪힐 사물이 미리 준비되어 있고 관객은 다음 단계에 그것에 부딪혀서 또 다시 넘어질 것을 예측하면서도 웃는다. 이게 웃음이 가진 기계성의 의미다. 결국 웃음은 생명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기계적 원리로 전락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박근혜씨가 심각한 재판정에서 웃음(냉소도 아니고 정말 웃음)을 보였다는 것은 돌아가는 상황을 기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독재자 아버지에 의해 20대 젊은 나이 때부터 통치 기계로 설정된 그녀는 상대방의 행위를 모두 기계적 행위로 파악한다. 그래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볼펜을 세우는 것과 같은 기계적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의미없는 반복적 행위 만이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날 때도 어린이들을 만날 때도 그녀의 표정은 기계처럼 굳어 있다. 이것은 상대방의 행위를 기계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배가 침몰했고 사람이 죽었고 유가족은 슬퍼할 것이고 이전의 사고에서 그래왔듯이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면 상황은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음이 돈으로 환산되어야 하는 기계적 과정이 유가족과 시민들의 진상규명 요구로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자(기계가 고장) 당황했고 그로 인해 표정관리가 안되었던 것이다. 만약 세월호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끝났다면 박근혜는 파안대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돈으로밖에 환산할 수 없는 상황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그것 봐라 내가 예측한 대로 상황이 돌아갔잖아!' 하면서 말이다. 

어린이 집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정성껏 만든 종이 핸드백이 너무 작다며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의 정성을 폄훼한다. 박근혜의 머리 속에는 어른을 위한 핸드백은 어른의 몸집에 맞는 크기를 가져야 한다는 기계적 인과성만 작동하고 있었다. '종이 핸드백에 뭘 넣고 다니면 찢어질 터인데' 라는 '효용 가치'를 주장해서 아이를 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기계가 제대로 작동했다.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차 유영하 변호사의 변론능력을 문제 삼아왔는데 이번에는 TV의 법정 공방 장면같은 것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증인과 변호인은 고성을 지르며 단답형으로 질문 대답이 이어지는 기계적 반복성을 보여 주었다. 이 기계적 과정이 자기를 충분히 변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웃음은 충격을 완화하려는 허탈한 웃음이 아니라 국정 농단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데서 나온 웃음이다. 지금 박근혜에게 세상은 여전히 인간을 닮은 기계들이 움직이는 공간이다.  박근혜의 웃음, 생명이 점점 더 기계로 전락하는 과정같아서 우울하다.    

김기대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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