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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여사, 김정숙씨 그리고 사모

기사승인 2017.06.20  04: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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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칭은 계몽이 아니라 문화로 풀어야

목사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 중에 '사모'는 어원이나 정체가 명확하지 않다. 스승이나 높은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사모'와 목사의 아내 '사모'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높여 부를 때는 용례가 같으나 목사 사모는 특이하게 1인칭으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목사의 아내가 자신을 사모라고 스스로 호칭할 때 나는 승려들이 자신을 스님(승님이 변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각나 실소를 금치 못한다. 나이 든 목사(아내)들이야 자랑할 게 나이 밖에 없어서 그렇다손 쳐도 젊은 여성들이 '아무개 목사 사모 아모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는 웃음을 넘어 구토가 유발되기도 한다. 목사가 자신의 아내를 소개할 때 '제 사모 아모개입니다'의 경우에도 동일한 신체적 반응이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높은 사람의 아내를 부르는 '사모'와 목사 '사모'는 다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른바 '교회 개혁' 운운하는 사람들이 사모라는 호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사모호칭의 문제점은 알아도 목사 아내에게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무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데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는 '사모'를 남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쁘다. '희생'을 인정해서 존경의 뜻으로 높여 부르지도 않으면서 '희생'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모라고 부르지 않으려면 교회 안에서 목회자 아내에게 어떠한 역할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주류교단의 교회들처럼 아내가 다른 교회에 나가는 것도 문제 삼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사모라는 호칭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마음의 진정성이 인정받는다.

결국 '사모'(목사의 아내)라는 호칭은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목사(아내)들의 욕구와 목사 아내를 사모라고 높여 부르면서 무임금 노동을 시키려는 교인들의 욕구가 묘하게 충돌하거나 조화하는 기괴한 호칭이다.

이처럼 호칭 문제는 참 어렵다. 게다가 상대적이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 보다는 관계에 따라 호칭이 결정된다. 옛 사람들은 호 또는 자를 통해 호칭의 문제를 해결했다. 정몽주는 정도전보다 다섯 살 정도가 많았는데 조선 건국을 놓고 대립하기 전까지 그들은 서로를 포은과 삼봉이라고 부르면서 우정을 유지했다. 

그만큼 복잡하기에 어떤 호칭이 옳다고 가르치기 보다는 문화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부르는게 좋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씨를 여사라고 호칭할 것인가, 씨로 부를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드세다.  씨 호칭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언론들은 '씨'를 고수할 모양이다.

여사라는 말을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 보면 1.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2.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로 나온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자면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대신 2번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진보 언론의 '여사' 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완강하다. 

'씨'냐 '여사'냐의 논쟁은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을 권양숙씨로 호칭한 일을 놓고 당시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이 '미디어 오늘'에 '아직도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라고 기고한 글이 시발점이 되었다. 강혜란 소장이 소개한 한겨레 신문의 교열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한겨레신문이 ‘영부인’도 ‘여사’도 아닌 ‘권양숙씨’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위계적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즉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그 서열에 따라 호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또 꼭 남편의 지위에 따라 여성에 대한 호칭을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여성을 남성과는 다르게 특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여성의 지위를 남편의 지위에 따라 호명하는 것은 더욱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언론이 대다수를 남성이라고 전제한 채 여성을 배타적으로 호명해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여성만 괄호를 만들어 ‘여’라고 기술하거나 ‘여성감독’‘여교수’‘여류명사’‘여기자’ 등 여성만을 배타적으로 호명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세상의 중심이 남성임을 확인시키는 중요한 메시지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미디어 오늘 2007년 10월 10일)

강소장은 칼럼의 결론에서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언론의 시도, 이러한 언론의 시도만으로도 변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라며 한겨레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당시에 논쟁이 과열되지는 않았다. 2007년은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거의 바닥을 칠 때여서인지는 몰라도 누구도 '권양숙 여사'라고 불러야 된다고 총대를 매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때의 미안함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김정숙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이 계속 되고 있다.

독일어에서 2인칭 대명사는 du 와 sie 가 있는데 sie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반대로 du는 친근한 관계에 사용된다. 마틴 부버의 명저 '나와 너'에서 부버는 너를 Du라고 불렀다. '너'에는 신도 포함되는데 말이다.

독일에서는 2인칭 대명사 sie 대신에 du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빠른 du 사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라는 1985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녹색당의 89.7%, 사민당의 62.2%가 좋게 생각한다고 응답했고 자민당은 59.9%가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연령대로는 20대의 80% 가 좋다고 대답했고 60대 이상은 64.3%가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40% 이상이 좋다고 대답해서 좋지 않다는 응답보다 높았다. 한국이나 미국의 교회가 보수적인 것과 달리 유럽의 교회는 사회 변화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통계에서처럼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호칭문제에 대해서는 개방적이다. 여성 민우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17년에는 문재인에게 투표했던 사람들 일부(진보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가 호칭에 대해서 '보수적' 이의를 제기하는 형국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겨레의 교열 원칙은 옳다. 로저 브라운과 알버트 길만의 공동연구 '권력과 연대성의 대명사'에 따르면 수직적 호칭은 권력관계를 중시하고 수평적 호칭은 연대성을 중시한다. 우리 문화권으로 옮겨 오면 '여사'는 권력관계고 '씨'는 연대 관계라는 말이다. 따라서 수평적 연대성을 강조하는 진보언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씨'를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 교열 원칙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 여사와 씨를 혼용한다면 한겨레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명심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씨'라는 호칭 사용에 대한 비판의 책임도 오롯이 한겨레에 있다는 사실이다. 호칭은, 특히 한국사회에서 사회학적으로나 아니면 한 신문사의 교열 원칙으로서만 해결할 수 없는 문화적 복합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호칭을 문제 삼는 이들도 한겨레의 교열 원칙 만큼이나 정당하니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봉건적이니 언론이 나서서 그들을 교정시켜 달라고 신문에 계몽적 역할을 부여한 사람은 없다. 또한 객관성을 중시하는 언론이라 할지라도 서양 언어체계의 대명사 문화와 우리말의 문화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마틴 부버가 이야기 했듯이 삶의 두 가지 관계란 '나와 너'의 인격적 대화의 관계고 또 하나는 '나와 그것'의 비인격적인 관계다. 마틴 부버에 따르면 나와 너의 관계는 대화의 관계로서 이러한 관계가 인격적으로 이루어질 때 공동체가 형성된다.

'씨'와 '여사' 둘을 놓고 보면 씨는 '호칭 통일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고 '여사'는 상호 존중을 통하여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인격적 관계를 앞세운 느낌이 강하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옳지만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씨'에서 '너'보다는 '그것'이 먼저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김기대 편집장 / <NEWS M>

김기대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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