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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우면서 아쉬운 '논두렁 시계' 국정원 개입 여부 조사 보도

기사승인 2017.07.05  19: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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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웠던 진보언론의 ‘노무현 때리기’…두 번째 자성 기회 삼아야

JTBC <뉴스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사건과 관련, 국가정보원 적폐청산TF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할 전망이라고 3일과 4일 연속 보도했다. ⓒ JTBC뉴스룸 화면 갈무리

한국시간으로 3일과 4일 반가우면서 아쉬운 소식을 접했다. JTBC <뉴스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사건과 관련, 국가정보원 적폐청산TF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할 전망이라고 이틀 연속으로 보도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사건이란 권양숙 여사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명품시계를 받았는데 수사가 시작되자 논두렁에 버렸다고 언론에 알려진 사건을 말한다. <뉴스룸>은 "국정원 적폐청산TF는 해당 언론 보도에 국정원이 적극 개입했는지 여부를 진상조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당시 고 노 전 대통령 측은 관련 진술을 부인했지만,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나간 뒤였다. 만약 당시 SNS가 있었다면 확산 속도는 더 빨랐으리라. 

‘논두렁 시계’ 보도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모든 언론은 명품시계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진보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 이전인 2009년 3월부터 검찰은 추부길 청와대 비서관, 이광재 의원, 박정규 청와대 민정수석 등 '노무현의 사람들'을 줄소환하며 고인을 옥죄어 나갔다. 언론이 고인에게 본격적으로 날을 세운 것도 이즈음이었다. 당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진보언론의 펜 끝이 보수 언론보다 더 매섭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그때 보도된 기사를 검색해 봤다. 그러나 정말 진보 언론의 펜 끝이 더욱 날 섰다는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특히 <한겨레>의 필봉이 매서웠다. 이 신문은 2009년 4월 8일과 9일 연속으로 사설을 통해 고 노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입을 열었다. 불행하게도 첫마디는 사과였다. 그동안 끈질기게 제기되던 여러 혐의 가운데 일부를 시인하며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잘못을 빈 것이다. 모든 고백은 나름의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의 시인은 오히려 국민을 참담한 심정에 빠뜨렸다.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었지만, 청렴성만큼은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가슴엔 대못을 박았다." 

- <한겨레>, 2009년 4월 8일자 사설 – 노 전 대통령, '국민 가슴에 대못 박았다' 

"노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 나가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말한다. '먼저 자세한 내용을 밝히면 수사에 미리 선을 그으려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서'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변명은 옹색하기만 하다. 노 전 대통령이 진실을 털어놓을 대상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보여야 할 마땅한 예의다. 검찰에 나가 진술하고, 혐의 여부에 따라 적합한 죗값을 치르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 <한겨레>, 2009년 4월 9일자 사설 –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 

노무현의 사람들이 검찰에 불려가던 2009년 3월 언론은 난데 없이 명품시계 보도를 흘리기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그해 3월31일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고가의 시계를 생일선물로 주는 등 ‘시계 로비’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고 썼다. 이어 4월22일 KBS는 단독보도라며 “지난 2006년 9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측에 고가의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 보석이 박혀있어 개당 가격이 1억 원에 달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위스 P사의 명품 시계”라는 내용을 전했다. 

이러자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명품시계 관련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몇몇 언론의 보도 내용을 아래 인용한다. 

“박연차 회장이 2006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에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다는 피아제는 어떤 시계일까.(중략)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받았다는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는 현재 국내 매장에 진열된 것이 5~6개뿐이며, 연간 10개 안팎이 판매된다고 한다.” 

- 조선일보, 2009년 4월24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회갑선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피아제 시계가 화제다.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앞두고 이 시계를 선물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고 한다.” 

- 아시아투데이, 2009년 4월24일 

보수 언론은 고 노 전 대통령 부부를 들먹였지만 주된 관심은 시계에 있어 보였다.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기사의 마무리는 ‘~한다’로 끝났다. 결국 추정만 있을 뿐 ‘팩트’는 없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JTBC <뉴스룸>은 4일 대검 중수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국정원 측이 노 전 대통령 소환 전, 시계 얘기를 (언론에) 강조하자고 했다. 검찰이 거부하자 소환 전 시계수수 의혹이 집중 보도됐고 소환 뒤엔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적었다. 즉, 이 모든 일은 국정원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 와중에 <경향신문>의 유인화 문화1부장은 2009년 5월 4일 <아내 핑계 대는 남편들>에서 연극 조의 대사를 통해 현 상황을 풍자했다. 

"여자: 당신, 구속 안 되겠지? 다른 대통령들은 2000억 원 넘게 챙기던데. 우린 80억 원도 안 되잖아요. 고생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돈 좀 보낸 건데. 지들은 자식 없나. 지들은 돈 안 받았어! 

남자: 내가 판사 출신 대통령이야! 고시 보느라 당신에게 가족생계 떠맡긴 죄밖에 없다고. 15년 전 내가 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에 고생담이 나오잖소. 

여자: 그래요. 당신 대통령 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동정표 좀 얻었잖아. 이번에도 내가 총대 멜게요. 우리 그 돈 어디다 썼는지 끝까지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 해도 국민들이 다 알 텐데 뭘... 

남자: 걱정 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 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 <경향신문>, 2009년 5월 4일 자 칼럼 – '아내 핑계대는 남편들' 

고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여론은 갈수록 싸늘해졌다. 이때 결정적 한 방이 나왔다. SBS는 5월13일 단독이라며 아래의 내용을 전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이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인은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고인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는 비판 여론에 묻혀 버렸다. 이러던 차 <경향신문>은 2009년 5월22일치 지면에 살레시오수도회 구로3동 김건중 주임신부가 쓴 '낮은 목소리로 - 시계나 찾으러 가자'란 제하의 기고문을 실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분에게 서운한 적도 없고 뭘 어떻게 해 달라고 그 흔한 인터넷 청원 비슷한 것도 해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전혀 이해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건 대통령 재임 시절에 가족들이 많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로 소환되는 대통령을 목격하면서 국민들 모두가 그러했듯이 나도 심란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중략) 다가오는 방학 때는 고생해서 몇십만 원 벌려는 아르바이트 걱정을 하지 말고 애들에게 봉하마을 논둑길에 버렸다는 시계나 찾으러 가자고 했다. 1억짜리가 2개나 되니 요행히 찾으면 횡재 아니냐고 했다. 또한,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가치를 담아 대단한 경매 프리미엄이 붙지 않겠냐고도 했다. 애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에이, 설마 버렸을라고요'였다. 하기야 찾아내서 주웠다 해도 그것은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는 물품일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 <경향신문>, 2009년 5월 22일 '낮은 목소리로 – 시계나 찾으러 가자' 

우연의 일치였을까? 바로 다음 날인 23일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 폭탄 발언, 그러나 상황은 이미 종료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2015년 2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폭로했다. ⓒ JTBC뉴스룸 화면 갈무리

일단 논두렁 시계사건 보도는 처음엔 검찰의 '언론플레이'였다가, 국정원 개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2015년 2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밝힌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 전 중수부장이 폭탄 발언을 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고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으니 말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때의 기억을 복기해 보면 언론은 노무현 때리기에 ‘올인’하다시피했다. 여기엔 진영이 따로 없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이지만 진보언론의 논조가 더욱 매서웠다고 느꼈고, 그래서 야속하다는 감정마저 들었다. 

새삼 당시 언론 보도를 들추는 이유는 요즘 상황과 맞물려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SNS상에선 진보언론 폐간 운동이 불붙었다. 발단은 호칭 문제와 '퍼먹었다'는 동사 때문이었다. 독자들의 감정은 격앙되기 시작했다. <한겨레21> 안수찬 기자가 SNS상에 올린 거친 표현은 한껏 격앙된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온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시 논두렁 시계 사건에서 보여준 진보언론의 논조였다는 생각이다. 

일단 진보언론 폐간 여론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새정부에서도 진보언론이 제 구실을 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만, 고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전후한 즈음 진보언론의 논조는 사실 검증보다는 다른 데 중심이 쏠려 있었다고 본다. 즉 진보언론 구성원들이 노 전 대통령이 청렴성,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의 가치를 배신한 동시에 청산됐다고 여겨졌던 대통령 비자금 관행을 부활시킨 데 대한 분노를 분출시켰다는 말이다. 

직접 겪은 일이다. 오랜 기간 진보운동에 몸담아왔던 한 지인은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서 고인을 맹공격했고,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지던 날에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심지어 고인을 향해 막말을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정서가 한 개인에게 그쳤을까? 앞서 인용한 <한겨레>의 2009년 4월 9일 자 사설 도입부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접하며 느끼는 심정은 충격과 분노 이전에 서글픔과 허탈함이 더 크다. 유달리 청렴함과 도덕성을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배신'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졸업'했다고 여긴 전직 대통령의 검은돈 수수 관행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몸소 나서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적폐청산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 동분서주한다고 적폐가 청산되지는 않는다. 적폐세력들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고, 보수 정권 집권 기간 복지부동에 익숙했던 관료들은 구습에 안주하려 들 것이다. 

이들을 뒤흔들려면 여론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 같은 기능은 언론이 담당해줘야 하는데, 현 미디어 지형상 보수 언론에게 이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진보언론이 감당해야 할 몫인 셈이다. 그런데 고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기억하는 많은 진보성향의 독자들은 당시의 논조를 떠올리며 진보언론을 전폭 신뢰하지 않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론을 무겁게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로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에서 "고인은 검찰의 언론플레이만으로 '640만 달러짜리 서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경향신문도 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고 적었다. 

이번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논두렁 시계' 국정원 개입 여부 조사는 진보언론이 자성할 두 번째 계기일 것이다. 만약 국정원이 '장난'을 쳤다면 진영을 떠나 여기에 놀아난 언론들은 석고대죄해야 한다. 특히 고인에게 날을 세운 진보언론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진보언론은 다시금 고 노 전 대통령 사건 보도에서 불거졌던 오류를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독자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앙금을 달래는 데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자와 진보언론 사이에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돼 나가기를 소망한다.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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