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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의 꽃길과 후미코의 불행

기사승인 2017.07.11  12: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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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을 위해 싸운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지난 달 29일 원내정책회의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국민의 당 이언주 의원이 SBS 기자와 나눈 이야기가 공개되어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언주 의원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미친X들”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고 표현했다. 또 “조리사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왜 밥하는 아줌마가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거냐” 등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밥 좀 하는 아줌마'들은 동네에 널렸다는 의미인데 이 발언은 급식 노동자 뿐 아니라 주부의 가사 노동을 향한 이언주 의원의 사고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영화 박열의 한 장면 후미코 역의 최희서와 박열 역의 이제훈

​논란이  커지자 이언주 의원은 “사적인 대화를 여과 없이 보도한 SBS에 강력한 유감을" 표했는데 '사적인' 대화야 말로 그 사람의 내심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노동에 대한 이언주 의원의 인식이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왜 이런 발언을 할까? 이언주의 약력을 보면 이유는 쉽게 드러난다. 서울대(불어불문학과) 연세대 법무대학원 석사, 노스웨스턴 법학석사 등 화려한 학력을 가진 그는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그리고 대기업의 법무실에서 근무했다. 이런 그가 '밥이나 하는 아줌마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이언주는 2012년 광명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꽃길에 들어 섰다. 당시 상대 후보는 광명시장을 거쳐 이미 4선의 선수를 가진 새누리당의 전재희 의원이었다. 노동부에서 노동 정책을 담당한, 즉 광명시와 같은 서민들의 도시에 어울리는 경력이었지만 이언주 의원은 첫 출마에서 강적을 꺾으면서 원내에 발을 디뎠다. 이 때의 경험이 그에게 다시한번 '승자 의식'을 심어준 듯하다. 거물을 제압한 초선 의원의 눈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후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더니 마침내 이번에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이에 대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10일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급식실에서 한 시간이라도 일해보라”며 이언주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였던 박열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통해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인이 재조명 되고 있다. 후미코는 박열을 찾아 동거를 제안할 정도로 당찬 여성으로 두 사람은 도쿄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반역하는 아나키스트 모임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사형을 선고 받았고 무기로 감형되었으나 옥중에서 의문의 자살을 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실제 모습

​가네코 후미코는 천황제를 신봉하는 아버지와 하층 계급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고, 후미코가 태어난 뒤 어머니를 버리고 어머니의 여동생과 결혼했다. 후미코 역시 호적 없는 무적자가 됐다.

어머니 역시 남성 편력이 심해 고아처럼 자라던 후미코는 9세 때 친할머니가 있는 조선(충청북도 청주)으로 건너왔다. 조선인을 수탈해 부를 쌓은 할머니였지만 후미코를 굶기는 등 학대가 심해서 오히려 동네 조선인들이 후미코를 거두어 먹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조선인들과의 연대 의식이 생겨난 듯 하다.  

3.1 운동을 직접 목격한 후미코는 그 저항정신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한다. 다시 도쿄로 들아온 가네코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가부장적 아버지의 사상적 배경이 천황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나키스트 운동에 매료된다.

천황이 신적 지위를 가진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다. 사람인데 신을 만들기 위해 메이지 유신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존재를 만들어야 했다. 이른바 히닝(비인非人)이다. 즉 천민들이 모여사는 부라쿠(부락部落)라는 비인 계급의 동네를 만들었다. 천민들, 재일 조선인들이 이런 부라쿠에 모여 들었다. 몇 해 전 MBC 무한 도전에서 유재석이 방문해서 감동을 주었던 우토로 마을도 일종의 부라쿠 같은 곳이다. 부라쿠의 히닝과 다름 없는 삶을 살던 후미코는 민족과 계급을 뛰어 넘어 조선의 독립과 천황제의 폐지를 위해 젊은 몸을 불살랐다.

후미코 자서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불행했다. 시종일관 가혹한 취급을 받았다. 나는 자아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지나온 모든 날들에 감사한다. 만약 내가 부족함이 없게 자랐다면, 내가 그렇게도 혐오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그 사람들의 사상과 성격과 생활을 그대로 수용했을 테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후미코와 이언주의 삶을 비교해 보면 환경이라는게 한 사람의 인격 성장에 있어서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가 드러난다. 꽃길을 걷던 이언주는 노동자의 삶을 아래 것들의 삶으로 보면서 자신을 '중심'과 '상위'에 두었다.  말그대로 '결손가정' 출신의 후미코는 위대한 투사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가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떠오른다고 주장한다. 호모 사케르란 고대 사회의 천민을 일컫는 말로 너무 천해서 신에게 바칠 제물로도 사용될 수 없고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존재다.

현대 사회에서 호모 사케르는 누구인가? 후미코와 같은 호적이 없는 난민들, 재일 동포 작가인 서경식이 즐겨쓰는 디아스포라들, 특히 그가 예로 든 전후 일본 사회에서 스스로 무국적자를 선택해서 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며 경계적 삶을 사는 재일 동포들, 정규 노동자도 되지 못해 하루 살이 목숨인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누구나 할 줄 아는 밥을 가지고 정규직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사람 쯤으로 몰리는 급식 노동자들, 이들이 정치 중심에 부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2012년 말단 공무원에서 시작해 겨우 지방 야간대학을 마친 전재희를 꺾으면서 이언주의 '선민의식'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광명시민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화려한 스펙이어서가 아니라 서민 출신이면서 보수 여당의 국회의원을 해 온 전재희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언주에게 상류가 되기를 바라지 말고 서민들에게 내려오기를 원했는데 이언주는 이번에 지역 주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반면 '근본도 없는' 후미코는 마치 니체를 읽은 것처럼 위대한  긍정을 말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행위가 비록 육체의 파멸(사형)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는 영화 '박열', '대역죄인 박열과 가네코'(김세중, 스타북스), '가네코 후미코'(야마다 쇼지, 산처럼)를 참고 했습니다.   

김기대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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