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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딱서니 없는 탁현민 사태의 본질은 이것

기사승인 2017.07.13  0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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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감수성이냐? 수구 세력의 기획 저지냐?

청와대 의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 정부가 최근에 보여준 몇가지 의전 ‘히트작’들은 청와대 의전 비서관, 즉 탁현민의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6.25참전 군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면서 국가 원수급에 준하는 의장대 사열을 받게 한 것, 미국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기념비 앞 연설, 김정숙 여사의 윤이상 선생 묘소 식수 등 좌우를 넘나들며 보인 의전들은 이전의 정부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기자가 탁현민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은 그 의전들의 민감성 때문이다. 솔직히 참전 군인에 대한 극진한 예우는 이른바 ‘진보’들은 잘 못하는 일이다. 그런 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지지 세력을 고려해 또는 ‘전쟁’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선뜻 의제를 내어 놓지 못한다. 반대로 윤이상 선생의 묘소 참배도 보수 세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라면 아무 거나 시비걸던 수구 세력들로 인한 트라우마가 치유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시를 거쳐 행정관에 오른 전형적인 관료들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성격의 이벤트도 아니다. 이런 일은  탁현민같은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는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자신의 말대로 고등학교 때 담배 피우다가 교무실에 끌려가 혼나던 중 우연히 담임 교사의 책상에 놓인 신영복 선생의 책을 보고 성공회 대학으로 진학했을 정도로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작년 문재인 후보와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문재인을 일약 네팔의 스타로 만들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부터 문재인 후보의 이벤트를 담당했고 이번 대선 과정 중에는 문재인 후보의 북 콘서트를 기획했던 탁현민에게는 '철딱서니 없음'으로부터 나오는 기발한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그런 탁현민이 지금 자신이 쓴 몇권의 책 때문에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책에 나오는 여성 폄하적인 표현 때문인데 그의 재능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여성단체들을 문제 삼을 수도 없다. 정말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렸다.

못할 말이 없는 거침없는 언변의 소유자인 김어준 조차도 ‘탁현민’의 이름을 거론 못하고 있다. 김어준은 얼마전 ‘파파이스’에서 문대통령을 수행해서 미국에 다녀온 김경수 의원에게 ‘이런 의전(장진호 기념비 앞 연설)들은 도대체 누가 기획하냐’고 물었다. 김의원이 머뭇대자 김어준은 ‘누군지는 알겠는데 말을 못하겠다’며 탁현민을 암시하는듯한 발언을 했다. 김어준이 한때 원치 않는 망명생활을 할 때 탁현민은 김어준과 함께 파리에도 잠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급 행정관 중에 탁현민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 전혀 없을까? 모든 행정관들을 전수 조사했을까? 2급 행정관은 청문회 대상도 아닌데 왜 야당은 유독 그에게만 사퇴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이제는 더불어 민주당 여성 의원들 조차도 여성단체를 의식해 반대하는 형국이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는 음주운전이나 위장전입과 같은 탈법행위도 없다. 그냥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허풍 섞인 회상이 있을 뿐이다. 철없는 그에게 젠더 감수성을 운운하는 것은 그를 너무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에게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그가 가진 잠재성 때문이다. 사실 임종석 비서실장이나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머무는 것은 야당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그들의 과거 학생운동 경력을 고려해 ‘빨갱이’라고 항상 몰아 부칠 수 있기에 나쁜 카드가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 탁현민은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종북’도 아니고 그냥 자유주의자다. 어느 종북이 6.25 참전 군인들을 그렇게 극진히 예우하겠는가? 바로 이 부분이 걸린다. 종북이라고 걸만한 아무런 요인을 갖지 못한 이가 계속해서 의전 히트작을 내어 놓을 때 야당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언론권력이 되어 버린 김어준과의 연결고리도 야당에게는 두려운 부분이다. 

여기서 탁현민 사태는 새로운 의제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한때 색누리당으로까지 불렸던 새누리당의 후예들이 탁현민의 표현에 시비를 거는 척 하면서 청와대 힘빼기를 우회적으로 시도하는 중인데 ‘젠더 감수성’의 이름으로 여타의 목소리가 수구 세력의 탁현민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과연 옳으냐의 의제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처음으로 정치계에 등장해 부각되기 시작했을 때 ‘박근혜’라는 존재 자체가 여성 정치력의 향상을 의미한다는 쪽과 이것은 여성의 정치력 향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나름 진보계 여성인사들 조차도 박근혜의 여성으로서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했었다.  (그 때 박근혜를 ‘여성’으로 이해했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2년 대선과정에서 전 연세대 교수 심리학자 황상민은 ‘박근혜는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말을 했다가 여성계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았는데 이 말은 표현처럼 음탕하거나 가벼운 말이 아니라 ‘여성과 정치’라는 주요한 의제를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였다.

젠더 감수성, 성평등의 시각으로 여성을 이해하는 것은 남성들이 두고 두고 공부해도 모자라는 부분이다. 오죽하면 '나쁜 페미니스트'(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2016년)의 저자  록산 게이도 여성 혐오적 가사를 담은 힙합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거리다가 깜짝깜짝 놀란다고 하지 않았는가?  페미니스트 여성도 이런데 남성, 특히 ‘한남충’(벌레 같은 한국 남자)들의 갈 길은 더욱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수구 세력이 놓은 덫에 걸리는 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탁현민 사태를 놓고 깊이 고민해야 될 부분이다. 물론 해묵은 NL PD 논쟁처럼 '젠더 감수성'이 우선인가 '수구세력의 엉큼한 기획'을 저지하는 것이 우선인가가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 박근혜가 '여성'인가 아닌가를 놓고 벌이던 20여 년 전의 그 논쟁처럼 말이다.

탁현민의 문제가 젠더 감수성만의 문제라면 나라도 나서서 그의 퇴진을 주장하겠다. 하지만 이번 논쟁에서는 그것이 주제인 듯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엉큼한 저들의 기획이 있기에 나는 그를 이번만은 ‘용서’하고 싶다.

단 한 가지는 용서 못하겠다. 별 내용도 없어 보이는데(한 권도 읽어 보지 않아 조금 미안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뭔 책은 그리 많이 썼나? 앞으로는 함부로 글 쓰지 말기를. 사람들이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기발한 기획력이지 시답잖고 왜곡된 여성관 강의가 아니다.    

김기대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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