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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의 변호는 사명' 이일 변호사

기사승인 2017.07.13  04: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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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을 바라보는 불온한 시선과 맞선다

이일 변호사, 한국에 있는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 www.apil.or.kr)에서 인권변호사로서 주로 난민과 구금된 이주민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있었던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수련회인 KOSTA 2017 수련회 강사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 대화는 7월 3일~7일 코스타 기간과 코스타 수련회 이후인 7월 11일 사이에, 시카고 지역에서 이어졌다. 그 이야기 중의 일부를 정리해본 것이다. 그를 통해 공익법센터 어필의 활동과 한국 내 난민 현실을 들어본다. (이하 아래에서 이일변호사는 이변으로 표시했다.)

이변 :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저의 배움의 이력, 그리고 평화와 정의,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옹호하는 것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는 계기가 있었다, 그 이후, 실제로 실무진입을 준비하다가 4년 전인 2013년 5월부터 공익법센터 어필이라는 멋진 단체를 만나 여기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낯설은 내용이 있다. 먼저 난민이다. 한국에도 난민이 유입되고 있나?

이변 : 한국에도 많은 난민들이 이미 있다. 그렇지만 난민들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사회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다. 제도적으로도 벌써 난민제도를 도입한지 23년 이상 지났다. 그렇지만 심각하게 낮은 난민인정률과 난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열악한 제도들로 인해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심각하게 낮은 난민 인정률이라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얼마나 되는가?

이변 : 우리나라의 난민인정률은 4%대에 불과하다. 1994년부터 지난 2015년까지 난민 신청자 수는 15,250명이었는데, 난민 지위가 주어진 인원은 580명에 불과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난민인정률은 37%였다. 난민인권센터 등의 자료에 따르면 난민신청자들은 파키스탄-이집트-중국-나이지리아-시리아-네팔-스리랑카 출신 순이다.

공익법인,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은 어떤 곳인가?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이변 :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피해자등 취약한 이주민들을 돕는 것과 해외한국기업인권침해감시를 하되 주로 난민신청자들을 도와 난민의 지위를 받아 한국에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부당하게 구금되어 있는 난민들을 보호소에서 풀려나게 하고, 부당하게 입국하지 못하는 난민들의 입국을 돕고, 가족들이 헤어져 있어 만날 수 없는 난민들을 돕는 일과 같은 개별 사건들을 돕고, 제도적인 개선과 사회적 인식제고를 위해서 입법활동, 네트워크 연대활동 등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법률기관이다.

공익변호사는 누구이고, 이일 변호사는 어떤 일을 하나?

이변 : 공익’(公益)을 목표로 직업으로서 공익변호사가 되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들이 공익변호사이다. 한국내의 전업공익변호사단체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법센터 어필, 희망을 만드는 법, 이주민지원센터 감동, 동행같은 단체가 있고, 로펌 설립공익재단등을 포함해 '전임(full-time) 공익변호사’는 겨우 60여명 정도이다. 그중 어필에서 함께 일하는 변호사가 5명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국내에 들어온 난민들이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서 이야기한 것처럼 워낙 난민인정비율이 낮은 것이 그 이유이다. 장기적으로는 소수 민족 또는 이주민들과 어떻게 사회통합을 잘 이루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나는 어필에서 난민 신청 및 소송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구금된 이주민과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한 작업들이다. 변호인단체가 아닌 단체들과도 협력해서 이일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전체 등록 변호사수가 2만 명 이상인 것을 생각하면 공익변호사의 수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변 : 전임 공익변호사 외에 다양하게 비즈니스를 하면서 공익활동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고 반드시 전임변호사만이 답이라고 할수는 없다. 다만 활동의 폭과 밀도에 분명한 장점은 있는데 아무래도 안정적 후원자 확보기반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기존 단체들에서도 새로 구성원을 찾기가 어렵고 새롭게 단체를 세워 진입하려고 하시는 분들도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가 큰 것 같다. 어필도 사실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웃음)

공익변호사가 의미 있는 역할이라는 것은 알 것 같다. 그런데 공익변호사의 길이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코스는 아닌 것 같다. 왜 ‘이일’ 변호사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변 : 어떤 이들은 나한테 “정치하려고 그러느냐” 묻기도 한다. 사실 나는 모범적인 법률가 코스를 밟아 왔다. 당연히 판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사법연수원 성적 우수자들이 가는 길인 군 법무관이 되었다. 군 법무관 출신은 어렵지 않게 판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에 진출하기에 많이 유리하다. 3년 정도라도 판사 경력을 쌓거나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할까도 고민했다.

판사를 하면서 영향력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일? 어떤 일을 말하는가?

이변 : 대학 때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일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었다. 물론 그 때 공익변호사의 길을 생각하였던 것은 아니다. 막연하지만, 약한 자들과 관계 맺는 삶, 내가 있는 곳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더 가까이 가는 삶이 하나님나라를 일구는 법조인의 길을 가고 싶었다. 고민을 이어가던 때, 친구가 선물한 크리스틴 폴의 《약한 자의 친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대화에서 사실 난민 지원 활동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난민 지원 활동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나?

이변 : 아니다. 없었다. 나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난민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인권, 노동 분야의 약자를 떠올릴 뿐이었다. 그런데 난민들을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이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급여는 받고 활동하고 있는가? 어떻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가?

이변 : 급여! 물론 넉넉하지 않다. 일반 NGO 단체 활동가 정도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주변 여건이 따라주어 감사하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대학 선교단체 활동 중에 만난 2년 선배인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응원해준다. 검소한 생활양식에 익숙하다. 내 상황은 좋은 편이다.

외국인 이주민들에 대해 배제와 혐오 감정이 한국 사회에 더 커지는 듯하다. 어떠한가?

이변 : 그렇다. 이주민에 대한 무관심은 극복하고, 오해는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특히나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혐오는 상당히 당황스럽다. 미디어나 SNS 등을 통해 왜곡된 이미지만 전달된다. 가짜뉴스 등을 통해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쌍’에서 ‘불온’으로 바뀌었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주 한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변 : 여러분들 스스로도 이민자, 이주자로서 여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자발적인 이주가 많을 것 같다. 자녀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발적인 이주가 아닌 강제/비자발적 이주(Forced /Involuntary migration)자가 있다는 것을 돌아보면 좋겠다. 이들은 본국으로 갈수도 없고, 정착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경계인이 되어 낯선 땅에서 주변부를 떠돌고 있는 취약한 난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관심이 없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여러분 곁에 난민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시대적인 아픔을 껴안고, 난민들과 실제 삶을 공유하면 좋겠다. 기독교인들은 이들 난민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발견하여 환대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은 또 다른 이민자인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신앙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에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야스다 고이치 지음, 후마니타스, 2013)를 읽었다. 책에서 본 어느 재일조선인의 말을 기억한다. 재특회가 아무리 재일조선인을 혐오하고 협박하고 위협해도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재특회의 그런 말도 안 되는 활동들을 방치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더 무섭다는 말이었다. 재특회는 '재일(在日)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으로 대표적인 혐한 극우단체이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의 증오하는 말과 행동때문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이 끼치는 침묵 때문에 이 세대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다”고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버밍햄 옥중 서신(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3년 4월)과 닮았다. 어필 변호사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무뎌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내고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이일 변호사와의 인터뷰 이야기를 마무리한 11일 아침, 이 변호사는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진행해온 행정소송에서 항소기각 패소 판결 소식을 마주했다. 그의 마음은 무겁고 복잡하고 뒤숭숭했다.

“사실은 더 자주 찾아오는 난민분들의 고통의 무게 앞에선 탈출구가 잘 안보이고 매번 처음 맞닥뜨리는 일 같다. 반복되는 낯섬이다.”

11일 오전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Chicago O'Hare International Airport,), 이 변호사는 이제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그 낯섬과 마주하는 한국의 그 삶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에 이방인 나그네를 환대하던 그 옛날의 정겨움이 한국과 이민 사회에 이웃한 난민과 또 다른 이주민 이웃들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공익법센터 어필

www.apil.or.kr / 02-3478-0529 / 후원계좌: 국민은행 006001-04-263886 (㈔공익법센터 어필)

김동문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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