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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천안문 4인방, 류샤오보 사망

기사승인 2017.07.14  0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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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기능하는 죽의 장막에 갇힌채 생을 마감한 중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

2010년 12월 10일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투르비오른 야글란드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빈 의자에 메달과 증서를 올려놓고 있다. [AP=연합뉴스]

류샤오보(劉曉波, 중국 인권운동가, 1955-2017)가 61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는 지난 5월 수감중이던 교도소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보석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패혈성 쇼크 및 복부 감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 다발성 장기기능상실로 7월 13일 사망했다. 

가혹한 시대에 스스로 뛰어들었던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는 가혹한 탄압의 시대를 살아냈고, 가혹한 말년을 살아냈다. 지난 1989년 하와이 주립대 초빙교수 시절 일어난 천안문 학살 사건을 좌시하지 못하고 중국에 입국한 것이 그의 인권운동의 서막이었다. 다른 지식인 지도자들이 이 사태를 계기로 모두 해외로 출국한 반면, 류샤오보는 거꾸로 입국해 민중들의 곁을 지키며 유혈진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천안문 4인방"(4군자)로 불리우게 된다.  

이후, 그는 반체제 활동으로 인해 네 차례 체포되며, 구금과 억류, 노동교화형을 받아왔다. 결국,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중국 민주 개혁의 중점 과제임을 피력하며 선언한 '08헌장'을 계기로 그는 지난 2009년 국가전복선동죄로 11년 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옥중에서 중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당시, 중국 정부는 "노벨평화상에 대한 모독" 운운하며 주변 각국에 시상식 불참을 강요하고, 이를 비판한 노르웨이에 대해 '연어 수입 금지'라는 경제 보복을 감행해 각국의 빈축을 산 바 있다. 실제 노르웨이는 이 조치로 인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향후 중국 비판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지난 5월 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의 가족과 본인은 서방에서 진료받으며,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후, 이러한 그의 의사를 지지한 독일에서의 치료를 추진했으나, 중국 정부는 "오랜 비행시간을 버틸수 없을 만큼 병세가 위중하다"는 이유로 출국 금지 조치를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은 류샤오보의 출국으로 인해 해외 반체제 활동이 탄력을 받을 것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로 인한 결과라는게 중론이다. 한편, 류샤오보가 "죽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죽고 싶다"는 바램을 드러낸 것은 남겨질 아내의 자유를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그의 죽음을 앞두고 서방 외신은 안타까움을 전했다. 천안문 사건 보고로 퓰리처상을 받은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즈 기자는 "류샤오보는 우리 시대의 넬슨 만델라"라고 칼럼에서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류샤오보의 죽음으로 세계는 "도덕적 위인"을 잃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노용환 기자 / <뉴스 M>

노용환 noh@newsnjoy.us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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