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와 아베 정권의 역사 세탁
군함도와 아베 정권의 역사 세탁
  • 지유석
  • 승인 2017.07.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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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개봉에 앞서 알아야 할 것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군함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아베 정권의 역사세탁 시도와 맞물려 있다. ⓒ UNESCO 홈페이지

일본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군함도, 일본명은 ‘하시마’다.  007시리즈 <스카이폴>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2012년 CNN이 정한 ‘세계 7대 소름 돋는 장소’ 중 하나로 포함되기도 했다. 실제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건축물은 세기말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일본은 이 섬을 일본 산업혁명의 유산으로 선전한다. 특히 일본은 이 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반면 우리에겐 이 섬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로 끌고와 헬멧과 속옷만 입힌 채로 지하 1,000m 갱도에 내려보냈다. 

비단 군함도뿐만이 아니다. 야하타 제철소, 미쓰비시 광업 하시마 탄광, 다카시마 탄광 등 총 7곳에 5만 8000명의 조선인들이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일본은 이 같은 슬픈 역사는 철저히 외면한다. 일본 정부는 한 술 더 떠 국제사회를 상대로 말바꾸기마저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조선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강제로 노역하게 된(forced to work)'이란 표현으로 강제 징용 사실을 에둘러 인정했다. 이어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약속했다.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의 약속을 받아들여 세계 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는 유네스코의 승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forced to work'이란 영어 표현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군함도-쇼카 손주쿠, 역사 세탁의 현장 

군함도 말고 주목해야 할 대목은 또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 현에 있는 쇼카 손주쿠까지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쇼카 손주쿠는 에도 막부 말기 부국강병과 정한론을 설파한 요시다 쇼인이 문하생을 가르치던 서당 유적이다.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실질적 배후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 테프트 밀약의 주역 가쓰라 타로, 초대 조선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 등 한반도에 마수를 뻗친 일본의 정치가들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들이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적 영향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에게까지 이어진다. 

아베 총리는 공개석상에서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스스럼 없이 밝혔다. 그리고 총리실까지 나서 쇼카 손주쿠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근대 일본에 사상적 영감을 불어넣은 요시다 쇼인의 체취를 살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단순히 자국의 문화유산 보존에 머무르지 않는다. 

군함도가 일본의 산업화를 상징한다면, 쇼카 손주쿠는 일본 근대정신문화의 총본산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아베 내각이 군함도와 쇼카 손주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공들인 이유가 엿보인다. 즉, 강제징용과 한국 등 주변국을 침략한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지워내려 한다는 말이다. 

아베 정권의 역사 세탁은 아베의 정치적 야망과도 맞닿아 있다. 아베 총리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꿈꾼다. 그런 그에게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는 반성해야 할 과오가 아니라 오늘에 되살려야 할 자랑스런 유산인 셈이다. 참으로 통탄스럽다. 일본의 산업화는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이 또다시 침략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하고자 한다. 아베 정권이 저토록 과거사에 일말의 반성도 없이 보통국가를 넘보는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 견제라는 전략 목표를 세우고 미-일 동맹의 '진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를 가속화시켜 나갔다. 마침내 2015년 4월 미일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합의했다. 미일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새 가이드라인은 미일 동맹이 평화유지활동과 해상 안보, 병참 지원 등 일본법과 규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어느 곳에서나 국제 안보에 더 큰 기여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제 아베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평화헌법 개정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따지고 보면 일본 우익세력으로선 미국의 이 같은 지원이 하늘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다.

종속적 한일관계 스스로 되돌아 봐야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 징용을 그린 영화 <군함도> ⓒ CJ엔터테인먼트

이 지점에서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되짚지 않을 수 없다. 군함도 강제 징용 조선인의 실상, 그리고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 과정에서 벌어진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일본이 백주에 역사세탁을 자행함에도 한국 정부는 무사태평이다.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는 식민지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일 관계가 종속적이라는 점을 생생히 드러낸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명시한 12.28 한일위안부합의는 이 같은 종속성의 정점에 놓여 있다. 

한국이 일본과의 외교전에서 번번이 고개를 숙였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국의 집권세력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거시적 전략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관철시켜 나가려 하기보다 그때그때의 현안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의 패착은 참으로 뼈아프다. 두 정권은 북한과의 대결정책에만 집착했다. 이는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대중국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미일의 패권전략에 훌륭한 빌미로 작용했다.

다행히 문재인 새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아베 총리가 이른바 ‘아키에 스캔들’로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은 것도 우리로서는 반길 일이다. 그러나 외적환경 변화에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미일의 패권전략에 휘말리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게 새정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정부의 과제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침 오는 26일 군함도의 실상을 그린 영화 <군함도>가 개봉될 예정이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군함도의 아픈 역사, 그리고 아베 정권의 역사세탁까지 함께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군함도의 갱도에서 죽어간 122명의 조선인 강제 징용자의 넋을 기린다. 이분들이 속히 고국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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