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수치 [토일렛] 상영을 반대한다
한국 영화의 수치 [토일렛] 상영을 반대한다
  • 최은
  • 승인 2017.08.11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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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에 편승하려거든 이 영화를 보라
영화 <토일렛>의 메인 포스터.ⓒ 스토리제이

영화 소재만으로 영화를 판단하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왔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봐야 한다고. 영화에서 재현되는 폭력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고도 말해왔다. 그것을 통해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고도.

일관된 기준으로 나름 성실하게 고민하고 싶지만, 아무리 거리를 두고 보려고 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모든 것이 우발적 분노에서 시작되었다!"고? 8월 개봉을 확정했다는 영화 <토일렛>의 홍보문구로 쓰인 문장이다. 여기에는 버젓이 강남역 여자화장실의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도 되어 있다.

감독은 뒤늦게 이 영화가 강남역 살인사건과는 상관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무지와 무능력을 방패삼아, 이 사건을 동시대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대중을 더욱 우롱하는 발언이다. 당시 가해자가 화장실 앞에서 한 시간 가량이나 여성 희생자를 기다렸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 곳이 다름 아닌 화장실 앞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인 양 두려움에 떨며 분노했고,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더러는 남성이어서 미안하다고 고백했던 그 사건 이후 겨우 일 년이 지났을 뿐이고, 유사한 폭력이 지금도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는 2017년이다. <토일렛>은 대중의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을 쉽게 건드리지 않는 대중영화의 암묵적 법칙마저도 무시했다.

이런 '핫한' 소재를 선점했다고, 그들은 틀림없이 잘했다, 뿌듯해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졸속으로, (오죽 급했으면) 한 사람이 주연 각본 연출 다 도맡았던 거겠지. 다른 '멀쩡한' 영화인들이 호응을 해주지 않아서 생긴 결과였던 거라고, 위기에 강했던 한국영화와 대다수의 한국영화인들이 여전히, 아직 그 정도는 된다고, 누구라도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피 흘려 간신히 다져가고 있는 고통의 현장에 그렇게 쉽게 발 딛는 거 아니다.

최은 영화평론가 ⓒ 최은

사족. 그럴 가치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이 영화가 논란이 되느라, 오기가미 나오코(Naoko Ogigami) 감독의 사려 깊은 동명영화 <토일렛>(2010)이 온라인 검색 우선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민폐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쓴이 최은은 영화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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