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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남한산성일까?

기사승인 2017.10.08  04: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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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남한산성일까? 영화를 보고 난 정치인들의 제각각인 의견들을 보면 현재 한국의 정치와 이 영화의 상관관계가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확실히 청에 항복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이 옳았다고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50만의 조선의 민중이 청에 끌려갔다는 자막을 보면서 누가 옳았다는 생각은 무색해지고 호란이 끝난 후 그렇게 살아남은 민초의 삶은 평화롭기만 하다.

영화의 시작은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이 뒤늦게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으로 혼자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이때 인조의 피신 때 강의 얼음길을 안내했던 노인이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한 채 먹고 살기 위해 청나라의 군대를 도와서 겨울날 버틸 끼니라도 받을 생각을 하자 김상헌은 손녀와 같이 남한산성에 가자는 회유를 거부한(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을 손녀의 뻔한 죽음을 묵인한 채) 노인을 살해한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은 노인의 손녀는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죽은 할아버지를 찾아 홀로 청의 군사의 포위를 뚫고 남한산성까지 찾아오게 된다. 이 작은 소녀를 책임지게 된 김상헌은 소녀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끝까지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던 김상헌은 인조의 굴욕 이후 자살을 택하는데 그의 죽음이 국가의 치욕에 대한 분노의 죽음이었는지? 아니면 손녀의 할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의 죽음이었는지 모호하게 자살 장면을 카메라로 잡는다. (실제로 김상헌은 당시 기준으로 82세라는 장수의 삶을 누렸다.) 

마치 목을 매단 것처럼 비춰지던 카메라는 아직 살아있는 김상헌을 보여주고 벽에걸린 칼을 보여준다. 그는 마치 속죄라도 하듯 노인을 죽인 칼로 자살을 한다. 이런 최후를 택한 척화파 김상헌이 영화속에서 백성들의 고생과 죽음 앞에서 정치인 모두 죄인임을 자백하는 모습을 보면, 우린 그를 조금은 동정하게 된다. 김상헌은 최명길에게 자신의 과오를 깨닫듯 새로운 세상은 그들(정치인들) 모두가 물러난 세상이라는 것을 말한다.

<남한산성>은 김훈의 원작소설을 황동혁 감독이 영화화했다.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과 작가의 상상력 그리고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고증적인 영화의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영화는 옥에 티처럼 엉성한 소품들과 분장이 눈에 거슬린다. 적의 포사격은 말도 안되게 장거리포에 정확하기까지 해서 당시 작전이나 화기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집중이 방해되는 요소다.  다만 영상미를 추구한 흔적들이 영화 보는 내내 느껴졌다. 이 영화를 고증적인 시선으로 보고 그 시대의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면 영화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역사 속 사실과 가장 큰 차이는 남한산성의 항복 전에 강화도의 함락과 세자가 사로잡힌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다. 왕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지방의 군사들이 모두 격퇴당한 사실도 영화는 극적 감정 이입을 위해 힘없는 백성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 왕의 첩지를 전한 서날쇠(고수)를 죽이려 한다는 배신 코드를 집어넣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고증보다는 감독이 말하는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과 정치인 관객과 그리고 감독까지 백성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이야기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정치인은 왕의 무능과 굴욕에 민감한 반면 관객은 왕이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에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한다.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 우두머리의 머리 조아림 따위에 동정을 줄 마음의 너그러움이 백성 관객들에게 있을까? 노비로서 조선의 삶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는 조선 출신 청의 통역관의 말처럼 감독의 메시지에는 애국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있다. 국가와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국가라는 허상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김상헌, 최명길 두 충신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동료를 살리기 위해 성밖으로 나간 서날쇠(고수)의 모습에서 순수한 희생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같이 싸우자는 대세와 명분 있고 피 끓는 결정에 편드는 것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쉬운 일이며 최명길처럼 치옥적이며 냉정한 판단이 얼마나 지탄을 받는지 영화는 계획적으로 보여준다.

“내게 당면할 문제를 당면할 뿐이다.” 라고 말하는 철학적이면서 무책임한 김상헌의 말과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김상헌의 서날쇠를 향한 속죄와 부탁의 큰절의 올리는 모습을 담은 영화 <남한산성>은 북핵문제로 어수선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진정 무엇인지 이야기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과 일본의 힘겨루기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남한과 북한에겐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남한산성>과 같은 상황을 현명한 판단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남한산성>에서 좌도 우도 없이 그저 ‘쓸데 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살아 남으라는’ 메시지를 통해 현 대통령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인 것 처럼…

하지만 영화는 척화파들의 주장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명나라를 지키면서 조선을 소중화라 여겼던 사대주의에 있었음을 외면한다. 좌든 우든 강경파든 협상파든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같다는 이른바 '국뽕'영화의 냄새도 난다. 

역사 속에서처럼 남한산성의 성벽에서 얼어 죽는 군사의 처절한 모습도 청의 군대에 겁탈당하는 아녀자도 그래서 태어난 호로자식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영화는 고상한 감독과 작가의 의도만 묵묵히 전한다. 모든 잘못은 충의로 잘 포장된 당파싸움과 왕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는 메시지는 어쩌면 군함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브라이언 정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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