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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부탁

기사승인 2018.07.26  09: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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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석 목사 칼럼 [고 노회찬 의원이 목숨을 던져 지키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고 노회찬 의원의 영정앞에서 흐느끼는 유시민 작가 <오마이뉴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남은 유서 몇 장에서 그의 심경을 다 읽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궤적에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던지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스스로는 그 가치를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극도로 절망하였다는 표시일 것이며, 그리고 그가 붙들고 있었던 가치 만큼은 훼손되지 않고 계승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과 희망이 담긴 절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유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유언)을 그 어떤 것보다 무게 있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의 형식을 두고 그의 인격을 폄하하려 하거나 더구나 그의 가치를 희화화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따금 충동적인 자살을 야기하는 심한 우울증의 경우가 아닌 이상 한 사람의 의지적인 자진(自盡)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출생보다도 더 큰 무게가 있는 것이며, 그의 남은 생의 기회들을 자의적으로 포기하기로 결단했다는 점에서 자연적인 사망이나 질병 내지 사고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심장한 일이자 힘겨운 선택이었으리라고 봅니다. 더구나 유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할 것입니다. 

정의당에 남긴 유서만 전문이 공개된 상태에서 이러 저러한 상상을 시도해 보는 것은 또 다른 추측성 혼란만 가중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애도란 그나마 반추와 묵상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질곡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저항하고 투쟁해 온 고인의 삶과 죽음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가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던 가치는 취약한 분단 상황과 군사 독재 그리고 재벌 중심의 개발 경제 구조로 인해 독버섯처럼 번져 나간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태동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속한 정당의 이름(정의당)이 암시하듯, 군사 독재 하의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이건 아니다'라고 하는 불의에 대한 저항 의식이 결국 그의 역사관을 형성하였고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서 당시 엄혹한 시절 감히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유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며, 부당하게 홀대 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기 위해 용접공이 되었고 일생을 노동자와 소외된 자들의 불공정한 아픔과 설움을 덜어보려고 줄곧 애써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이런 독특한 삶의 궤적은 그야말로 그의 가치와 신념과 꿈이 되었으며 나아가서 그의 인격 자체가 곧 정의와 평등의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한 평생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싸웠던 고 노회찬 의원 <노회찬 의원 홈페이지>

정치적인 불의, 경제적인 불평등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볼품없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일 것입니다.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저당 잡혀야 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의 생사여탈권을 저당 잡는 자들, 정치권력을 잡은 자나 경제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자들 역시 더욱 추하고 부끄럽게 생을 마감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불의와 불평등은, 이처럼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독약이자 염병이라 하겠습니다. 힘이란,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이처럼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독하고 적폐/병폐를 청산하기 위해선 정치력이든 경제력이든 그 힘의 사용 방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힘이란, 내 이익을 위해 군림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대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상대방을 격려하고 세우기 위해 나를 낮추고 양보하며 도리어 상대방을 높이고 섬기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힘 있는 자들의 불의와 불평등을 바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역시 힘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불의와 불평등과 적당히 타협하여서라도 어떻게든 일단 힘을 가지려 들게 되지요. 따라서 사실 문제 의식을 지닌 진보주의자들이 도리어 이런 유혹에서 초연하기란 그만큼 더 쉽지 않은 법이며, 따라서 '정치판에 뛰어 드려면 불가불 살짝 지저분해 질 것을 감수해야만 하며 또한 어느 정도는 참작의 여지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상식 아닌 상식으로 회자하는 것도 그 때문인 줄 압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런 힘의 생리와 그 작동 원리를 진작에 알고 있었던 고인이 무엇보다 부끄러워하고 아파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렇기에 그 스스로 이런 전염병에 방심하였던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역정과 자기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하지 않기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을 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말하자면 고인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가치가 그의 삶을 지금껏 지탱해 왔다 하겠으며, 매한가지로 그가 택한 가치가 결국 그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치란 이처럼 우리의 목숨까지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인의 죽음의 방식을 근거로, 삶이란 어떤 연유에서든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원론을 문제 삼는다면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이 점에서 개인 노회찬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원론에 불과한 것일 뿐, 때로 어떤 삶은 살아 있는 것이 도리어 죽음보다 더욱 부끄럽고 힘겨운 삶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해서 죽음의 방식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리게 했던 그의 공적 가치와 신념, 곧 그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키고자 했을 만큼 소중하게 여겼던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던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고인이 품었던 숭고한 가치를 공유하기는커녕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고인의 죽음을 농담 수준으로 폄하하거나 그의 고상한 삶의 궤적을 무위로 돌리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고인의 삶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며, 역사는 또 다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불의와 불평등의 궤도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단순 재생하고 개념 없이 그저 반복 운행하고 말 것입니다. 

고 노회찬 의뭔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들 <JTBC>

더구나 후안무치한 인생을 살아온 힘 있는 갑들이 고인의 실수를 빌미로 마치 그의 인생과 그가 품었던 가치 자체가 잘못인양 침소봉대하여 왜곡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고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종 똥 묻은 개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모르기에 이런 꼴불견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해서 한 번 판이 흐려지고 나면, 그 판을 다시 복구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은, 적어도 자신만은 흐려지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키는 것만도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그들에게 꼬질꼬질한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음을 직시하고 자각하도록 하려면 똥은 고사하고 겨라도 묻히고 다녀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똥 묻은 개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라고 [속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똥 묻은 개를 향한 질책이 정당화되려면 겨조차도 묻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더러워진 "불판을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지난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그리고 우리 정치의 개혁을 위해 '불판을 바꾸기 위한' 초석을 놓는 작업이 그만큼 조심스럽고 큰 희생이 요구되는 이유라 하겠습니다. 정치적인 권위는 멀리 보면 결국 제대로 된 가치와 순전한 도덕성위에 기반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고인은 이 점에 착안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겨"가 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데자뷰로 비쳐지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혁의 1세대들에게 더 높은 기준과 더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개인에게는 힘겨운 일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왜곡된 정의와 불평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불가불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혼자 남겨진 아내와 부모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일이 되겠지만, 대의멸친(大義滅親)의 길을 가기로 외롭게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고인의 착잡한 심경을 추정해 보자면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제 고인은 개혁 1세대의 소임이 주는 무거운 멍에를 벗었습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이 비록 그리/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그의 삶의 아름다운 궤적은 결단코 그 빛이 바래었다 할 수는 없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생애를 통해 추구하고자 애썼던 그 자취는 그의 이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다시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품었던 비전과 이상이 그의 죽음 이후에 오히려 새롭게 조명되고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과 매한가지로 노회찬 의원의 생애가 남긴 불의와 부정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저항 정신과 그가 어린 시절부터 소중하게 품었던 대안 사회에 대한 꿈과 희망이 우리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는 반전의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남은 과업은 이제 고스란히 남은 세대의 몫이 되었습니다. 고인의 이런 처절한 희생이 이미 뿌려졌기에, 다음 세대가 좇아가야 할 길은 그처럼 희생 일변도의 외로운 길은 더 이상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딛고 비빌 수 있는 그의 어깨가 있기 때문이며, 어디가 길인지 앞장서서 길을 만들었던 그의 궤적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늠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족들의 평안과 정의당의 간단없는 전진을 기원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은 누구에게 희망의 몫을 남겼는가? <구글이미지>

권영석 youngseokw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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