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절, 속죄일에 돌아보는 반이민정책
나팔절, 속죄일에 돌아보는 반이민정책
  • 신기성
  • 승인 2018.09.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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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밀러에 대한 유대계 내부의 공개적 비판들

[뉴스M=신기성 기자] 중요한 유대 명절들을 지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에 대한 비판들이 유대 사회 내부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비판은 한 유대 랍비로부터 나왔다.

나팔절 메시지

지난 9일부터 11일 까지가 유대인들이 새해 명절로 지키는 로쉬 하샤나(나팔절) 이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 명절을 기념해서 지키고 많은 공립학교들이 휴교를 한다.

금년 나팔절에는 한 유대 지도자가 예전에 자신의 회당에 몸담았던 정부 고위 관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보내 주목을 끌었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에 있는 베스 셔 샬롬(Beth Shir Shalom) 회당의 랍비 네일 코메스-다니엘은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인 스티븐 밀러를 향해 국경에서의 가족 격리 정책이 자신이 몸담은 유대 공동체의 가치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밀러는 백악관에서의 그의 비중이나 역할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은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그는 유대계 후손으로서 그 자신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 자손이다.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겨서 추진하는 이 정책은 우리 유대 공동체를 향해 선포한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 격리 정책은) 내가 아는 모든 유대교, 유대 법, 유대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밀러 가족은 그가 9-10살 정도였을 때 이 회당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메스-다니엘은 백악관에서의 밀러의 역할을 보며 그가 받은 회당에서의 교육 그리고 유대 가르침의 실패로 진단한다.

"유대 관점에서 보면, 부모 자식간 관계는 극히 신성한 것입니다. 이 관계를 분열시키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당신이 추진하고 실행하는 이 정책도 잔인합니다."

한편 지난 8월 밀러의 삼촌인 데이빗 글로서(David S. Glosser)도 그들의 조부인 울프-라이브 클로서가 동유럽에서 피신해 엘리스 아일랜드에 왔다고 말하며 그를 비판했다. 글로서는 지성인이며 자신들의 유산을 잘 알고 있는 조카 밀러가 하는 일을 실망과 점증하는 공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미국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지탱해 온 삶의 근거를 뒤집는 이민정책을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메스-다니엘 랍비는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역사를 기억해야 하며 우리 모두는 난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나치 수용소에 부모들이 잡혀있는 동안 킨더트렌스포트(Kindertransport)를 통해 목숨을 구했던 어린 아이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국경을 넘다가 붙잡힌 서류미비 어린아이들처럼 유대인들도 연약한 소수였다고 말하고 절박한 상황에 놓인 가족들을 강제로 떼어 놓음으로써 전 세계를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었던 유대의 공헌을 헛되이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 스티브 밀러 ⓒabc News

속죄일에 떠 올린 사건들

나팔절에 이은 또 하나의 중요한 유대 절기인 욤키퍼(속죄일)을 맞아 밀러의 반이민정책에 관한 다른 유대계 내부 비판이 나왔다. ZP Heller는 소저너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가족이 70년 전인 1948년 가을에 난민 상태로 폴란드를 떠났다고 밝혔다.

나치가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 약 3백만 명을 살해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몇 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아남았고 헬러의 조부모인 샘과 버니스도 생존자 중 하나였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나라에서 반 유대주의, 폭력적 공격, 집단 학살, 경제적 박탈 등의 위협 가운데 살고 있었다.

바로 속죄일에 헬러의 조부모는 짐을 꾸리고 1살 난 딸을 데리고 독일 국경 지대였던 작은 폴란드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긴 여정을 속죄일에 시작했다. 왜 하필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명절인 속죄일에 여행을 시작했을까? 폴란드를 나와 다른 나라에 정착하기 위한 서류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국의 관심을 끌지 않고 조용히 나가려고 속죄일에 몰래 빠져 나왔던 것이다.

헬러는 미국이 전쟁 후에 유대인 망명자들을 제한하던 이민법을 바꿔서 자신의 조부모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나라에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엘리스 아일랜드에 도착한 그의 조부는 필라델피아로 이주해서 먼저 도착한 형제들과 조우하게 된다.

미국에 도착한 후 야간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후에 매카닉이 된 조부는 5년 만에 첫 집을 장만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을 뻔 했다.

최근에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만약 폴란드를 탈출할 때 당국이 막아섰다면, 자신의 어머니는 조부모와 격리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홀로코스트의 생존을 기뻐할 틈도 없이 동유럽을 지배한 공산 정권의 새로운 폭정 아래 신음할 수도 있었다. 어머니의 얘기를 듣는 순간 멕시코 국경에서 강제로 부모와 격리된 2,600여 명의 어린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비인도적 가족 격리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부모와의 재결합은 더디게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에서의 안전한 삶을 위해 국경을 넘는 많은 이들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전통적으로 난민들을 보호하는 인도주의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인 난민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법이 바뀐 덕분에 자신들의 가족 이민사도 가능했다고 밝혔다.

현재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같은 중남미 이민자들이다. 그들 가족들과 어린 아이들은 폭력조직과 가정 폭력 혹은 기아를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을 폭력 조직으로 칭하며 비하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여전히 12,800명의 어린이들이 미 전역에 걸쳐 수용시설에 갇혀있다.

그는 속죄일에 이 나라에 피신해 오는 사람들의 물결을 생각하고, 전후 유럽으로부터 피해 온 그의 가족과 수십만의 유대 이민자들을 기억하며, 중남미로부터 폭력을 피해 피난처를 찾아 온 수만의 가족들을 떠올린다고 고백했다. 난민들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이 나라의 본래적 환대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헬러의 모친 실비아가 벤드호프에 있던 난민캠프에서 흙을 가지고 놀던 모습 ⓒSojour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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