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본 통일 한국의 예후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본 통일 한국의 예후
  • 권영석 목사
  • 승인 2018.09.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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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능라 경기장의 열화와 같은 갈채에서 우리는 역시 한 겨레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백두산 정상에서 맞잡은 두 정상의 손에서 우리는 백두에서 한라까지가 다 우리의 한 강토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3차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역사였다 하겠습니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확인이자, 미래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남북 간 정상 차원의 만남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뼈아픈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첫 번째로 넘어야 할 관문을 이제 바야흐로 통과하였음을 일거에 천명하는 통큰 행보이자 사건/사변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헤어짐이 있었기에 다시 만남이 있는 것이며, 분단이 있었기에 또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예 헤어짐이 없었던 것보다 헤어진 이후의 다시 만남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단의 가슴앓이를 한 후의 만남인 만큼 그 정리는 그만큼 더 절절하고 더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어느 나라의 정상과인들 그런 진하고 격한 정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며, 언어를 뛰어넘는 교감이 가능하겠습니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며, 5천년의 역사와 문화는 결코 강요된 분단으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이은 속보와 영상을 접한 우리 남북의 8천만 동포들이 한결같이 울컥하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조선의 국력이 허약했기에 우리 근 현대사의 불행한 질곡이 불가불 초래되었고, 스스로 쟁취한 독립이기보다는 [또 다른] 외세에 의해 강제된 해방이었기에 남북 분단은 냉전 구도를 밑그림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국제 질서 안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해서 이제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은 명실공히 자주 국가로 홀로서기를 하자는 것(독립)에 다름 아니며, 이 일에 너나 할 것 없이 온 겨레가 한 마음으로 전력하자는 것(통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북쪽의 송이버섯이 남쪽의 이산가족들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진대, 한 겨레 한 민족으로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고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깊이 뉘우치면서 서로의 투라우마를 서로 헤아리고 어루만질 수만 있다면, 5000년간의 한 겨레 의식과 한 동포애로써 분단의 세월 70년 정도는 거뜬히 날려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함께 넘어야 할 난제와 풀어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직간접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국제 외교 관계에서부터 향후 서로 간의 이질적인 체제를 여하히 조정해 나갈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분단의 세월을 살아온 기간에 버금가는 긴 기간이 소요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모든 것은 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그 결말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남북한의 동포가 함께 같은 염원을 품고, 남북한의 대표자/지도자들이 국민들의 마음(민의)을 대변하여 피차 양보하고 조정해 간다면 궁극에는 통일의 길로 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겠습니다. 그리고 '비핵화'는 이 큰 그림의 부분 집합으로서 반드시 선취되어야 함은 물론일 것입니다. 남북 간의 문제를 우리 겨레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까지 고려하고 의식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적인 처지가 참으로 여전히 서글프기 그지없으나, 외세의 식민 침탈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던 허약한 구한말의 불가항력적인 처지의 연장선에서 일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선을 그을 것은 선을 긋는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남북 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서도 안 되었고, 또 피차 원수가 될 필요도 없었음에도 당시 우리 선조들의 무지와 일부 지도자들의 탐욕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 강토를 가르고 민족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내전으로 치닫게 한 것 역시 우리가 이제는 덮고 가야할 우리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상황의 변화나 조건을 전제하기 이전에 남북 정상이 일심하여 종전과 평화를 선언하고 한겨레임을 천명하는 의지의 표명이 먼저 선행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하겠습니다.

"때려잡자 김일성"을 아침 점호 때마다 구호로 부르짖던 군대 생활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러운 남북 화해의 무드가 아직은 여전히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본래 우리는 한 겨레였기에 그리고 본래 우리는 한 강토였기에 만시지탄이나마 이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샬롬(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남북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 정상 회담인 셈이며,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은 북쪽과 남쪽 동포들의 태생적인 염원을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니라 하겠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정상 회담이라기보다는 한 형제간의 회담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남쪽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북쪽의 핵무기 개발은 그동안 각각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겠지만, 이제는 남북이 하나가 되고 이 민족이 더불어 공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밑거름으로써 각자가 가진 것을 서로를 위해 내어 놓고 서로 양보하고 포기하기도 함으로서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는 수단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형제 나라가 하나가 되겠다는 데에 이웃 나라들이 격려는 못할망정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될 일입니다.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서로 맞물리고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쉽사리 간과해선 안 되겠습니다만, 반대로 그런 갈등을 역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도 함께 모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조심스러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아마도 당장 하나의 정부 아래 모든 것을 재편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겠거니와] 능사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쪽은 자본주의 체제에 기반한 민주주의 정부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북쪽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반한 사회주의 정부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는 형제 국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한 지붕 두 정부를 지향할 수만 있어도,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적개심을 털어내고 동포애를 회복하여 샬롬(통일평화)의 축복과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사이 3차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의 소원이 그저 노랫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이루어질 현실임을 남북한 겨레의 가슴에 설레임으로 자리 잡게 한 역사적 사건이며, 이후로 우리 후손들은 더 크고 놀라운 역사의 목격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강대국들의 식민 침탈의 희생국이었지만 도리어 침략국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수탈의 아픔과 가난을 딛고 일어서서 통일과 샬롬이 가능하다고 하는 희망의 빛을 온 인류에 비춰줄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다만 우리는 그 [통큰] 날이 올 때까지 샬롬에 대한 굳은 믿음과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 사랑의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 서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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