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본 가짜뉴스와 에스더의 잘못된 만남
기독교인이 본 가짜뉴스와 에스더의 잘못된 만남
  • 김민수
  • 승인 2018.10.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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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특정세력 위해 댓글 작업-난민과 동성애 혐오... 그건 선교가 아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만큼 본래 의미와 다르게 각인되고 사용된 단어는 없는 듯하다. 그리고 각자의 소신에 따라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긍정 혹은 부정하면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방을 공격해왔다. '내 편이면 무조건 선이고 네 편이면 무조건 악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영이 결집할 때에는 정치적인 연결고리에 종교적인 연결고리가 더해지면 훨씬 강력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곤 한다. 

여기서 '가짜 혹은 거짓'이 종교적인 외피를 쓰고 접근해 종교적인 신앙 고백에까지 이른다면 맹신도들은 목숨까지도 바쳐가며 헌신하게 된다. 이것이 종교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가 되게 된 이유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세계사적으로 콘스탄틴 황제는 이것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이었다(그는 313년 로마의 국교를 그리스도교로 삼는다).

반공이데올로기와 기독교

최근 "한겨레"의 보도로 가짜뉴스의 뿌리가 어딘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차적으로 지목된 곳은 바로 보수 기독교계였다.

 

종교의 힘이 더 강력한 시대에는 '정교일치'의 사회체제를 구축했고, 정치의 힘이 더 강력할 때에는 '정교분리'의 사회체제가 구축됐다. 그리고 마침내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무한 긍정과 인간이 만든 정치체계가 우위를 점했다. 그러면서 대체로 정교분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와 종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공생했으며, 해방 후 남한의 경우엔 '반공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방편으로 기독교를 적절하게 이용해왔다.

한국전쟁과 1953년 정전 이후, 1950년대 한국의 기독교부흥운동은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면서 교회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전초기지가 됐다.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 이념의 근간을 마련한 마르크스의 선언('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을 맥락과 상관없이 사탄적인(?) 선언으로 간주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정권에 빌붙어 기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동시에 정권은 기독교뿐 아니라 종교를 이용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됐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진보=빨갱이'라는 공식은 '보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유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했으며, 한국의 기독교는 기꺼이 '보수'를 '믿음(신앙)을 지키는 것'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나마 이 시기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진보 기독교계를 대변하고 있었지만, 1988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탄생하면서 소위 '보수기독교'가 공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됐다.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는 암울했던 1970,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하면서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결실을 봤지만, 한기총은 보수라는 기치를 내걸고 공공연하게 보수정치와 야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급격한 정치적인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정치적인 활동이 지극히 편향적으로 행해졌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비판을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거짓과 가짜뉴스를 양산해내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혐오로 점철된 가짜뉴스 양산, 그 이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 대통령 부부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 사진은 2011년 3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 조찬기도회" 당시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의 요청에 따라 참석자들과 함께 합심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이에 따라 장로가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정권은 최대수혜자가 됐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권 역시 이념적인 성향에 따라 보수 기독교단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적지 않은 수혜를 누렸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공생관계가 됐다.


지난 1일 <한겨레> 기획보도로 '가짜뉴스의 근원지'로 지목된 '에스더기도운동'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뿐만 아니다. 2일 <한겨레>는 '에스더기도운동'이 우파단체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에 43억 원가량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포털에 실린 뉴스에 정치적인 댓글을 조직적으로 다는 걸 연습하는 '미디어 선교학교'를 운영해왔다는 사실도 나왔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 기독교계는 태극기부대와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고, 성조기도 모자라 이스라엘기까지 집회에 등장시켰다. 보수기독교단체들이 미국의 보수 기독교 영향을 많이 받은 것과 생각 없이 맹신하는 교인들에게 '이스라엘'이 주는 상징성 등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가짜뉴스의 희생양

지속해서 가짜뉴스에 노출된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음에도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 좌절하면서 공격적인 성향을 품게 됐다. 요즘은 옳고 그름을 떠나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곧 보수의 기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착시 현상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진보 진영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도 위와 같이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맞서 싸우기 버거운 정부보다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시민단체 등이 대응하기 수월하다 생각해 물리적인 힘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 있다. 최근 인천과 제주에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이들의 행태를 통해 그들의 대응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성소수자 문제와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가짜뉴스로 택하는 단골 소재다. 이 이슈들은 문자적으로 성서를 취사 선택해 공격하기 편리하고, 자기편의 맹신을 굳건히 하는 데 유요한 주제기 때문이다.

결국, 분노에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혐오라는 짐승'을 키워낸다. 그들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에 대한 각종 가짜뉴스를 양산해냈지만(현재도 만들고 있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무런 위협의 대상도 아닌 이들을 적으로 삼아 힘을 결집해왔던 것이다. 

그들의 전략은 적중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는 20대와 노년세대가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돼 버린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용어니까 기독교일까?

광화문광장 인근을 지나는 "애국보수집회" 2018년 4월,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제 종교이야기를 해보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가짜뉴스의 근원지가 '에스더기도운동'이며 그들은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확산하는 이들을 '인터넷 선교사'라고 지칭했단다. '에스더' '기도' '선교사', 모두가 기독교 용어다. 그래서 이들이 기독교인일까? 아니, 오히려 이들은 기독교를 빙자해서 기독교를 욕되게 하는 이들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구약성서 중 한 권으로 기록돼 있다. 에스더는 유대인으로 기원전 617년 예루살렘으로부터 페르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후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하만이라는 사람의 계획을 입수한다. 그가 잔치를 베풀자 왕이 크게 기뻐하며 '소원을 말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에스더는 하만의 목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자기 민족을 지킨 인물이 됐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 여기에서 착안하여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에스더기도운동 본부가 한 일이 과연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인지는 의아하다. 그들은 단지 이름을 빌렸을 뿐 반기독교적이며 반성서적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에 불과하다.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교회 세습이나 하는 대형교회나, 반공설교나 하는 목사나, 검증되지도 않은 교회들을 끌어들여 연합단체를 만들어 기독교계에 영향을 끼치려는 이들이나, 태극기집회에 십자가를 들고 참석하는 이들이나, 성직자의 권위를 이용해서 여신도들 성폭행하는 목사나, 종말 운운하며 교인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이들이나, 그 맹신자들을 '기독교'라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며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확신한다고 해서 그들이 기독교인일까.

강력한 법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기독교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이 역사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했더라면 이런 가짜들이 판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자업자득이 아닌가? 머리로만 믿고 삶으로는 살지 않는 가짜 신앙인들을 양산한 결과를 우린 어렵지 않게 목도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신교회 장로였으며, 박근혜 정권 당시 총리를 했던 황교안씨는 개신교 전도사라 했다. 그리고 최순실씨 '비서' 역할을 한 청와대 이영선 전 행정관은 '한국선교안전센터'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독교가 도매급으로 넘어가도 할 말이 없는 이유다.

가짜뉴스를 양산해내는 등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기독교인인 필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종교가 아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이들과 그것을 신봉하는 이들은 법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들의 주장이 진짜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강력한 법적 조처를 하는 것만이 가짜뉴스를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듯하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가짜들

지난 9월 27일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가짜뉴스의 뿌리 기획보도.

 

기독교계에는 '에스더기도운동'과 유사한 단체들이 많다. 그들은 각종 혐오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대형교회의 비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가령, 각종 포털과 개인 사이트의 글까지 접근해 조직적으로 블라인드(비공개) 처리를 요구하는 식이다.


필자도 '한국인터넷선교회'라는 단체로부터 대형교회의 문제를 비판했던 글을 신고당해 비공개 처리되기도 했다. 개인이 조직에 맞서 싸우기가 쉽지 않고, 때로는 귀찮아서 내버려두기도 했다.

노년층의 교인 중에는 가짜뉴스를 퍼나르고 대화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많다. 가짜뉴스가 교회에서 횡행하는 이유는, 가짜뉴스 생산 단체들이 기독교를 빙자해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결국 '돈과 권력'이다. 그런 점에서 '우상숭배'인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탈행위에 불과하다. 단지,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과 동류 취급당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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