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문지기', 낮아짐이나 겸손의 표현인가?
'성전문지기', 낮아짐이나 겸손의 표현인가?
  • 김동문
  • 승인 2022.12.2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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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0)

이 노래(시)의 바탕에 갈려 있는 것이 광야 생활 체험이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이 시에 담긴 '장막'은 그냥 집을 뜻하는 그림언어는 아닌 듯하다. 장막, 천막, 염소 털로 정교히 짠 천막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된 시대였다면 또 어떤 장면이 눈 앞에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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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남부 룩소에 있는 룩소 신전 뒤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김동문

이 시에서 '주의 궁정'과 '다른 곳'이 비교된다. '악인의 장막'과 하나님의 성전'이 대비된다. 주의 궁정과 하나님의 성전이, 다른 곳과 악인의 장막이 비교된다. 출애굽 시기의 고대 이집트나 바벨론 포로기의 그곳의 성과 화려한 공궐이 시인이 노래하는 악인의 장막과 겹쳐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을 봤다면, 바벨론 제국의 신전과 도시를 봤다면, 이 시인의 고백이 '정신 승리' 그 너머에 있는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 9:58, 마태 8:20)라는 예수의 고백과 탄식이 떠오른다. 화려한 헤롯 궁을 여우굴로, 로마 황제의 황궁을 까마귀 집으로 빗대는, 예수의 그 당당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시인은 파라오의 화려한 궁궐을 장막(천막)으로 묘사하고, 광야의 천막 신전을 궁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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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 나일강 서쪽 메디나트 하부 신전 탑문 ⓒ김동문

여기서 한 번 더 곱씹게 되는 표현이 있다. '성전 문지기'이다. '성전 문지기'라는 표현에 등장하는 '성전'이 건물 성전인지. 천막 성소(성막, 회막, 장막?)로 들어가는 입구인지 뚜렷하지는 않다. 그 지위가 낮고 천하고, 보잘것없는 그런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시인이 그것을 강조하는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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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 나일강 동쪽 카르낙 신전 기둥 ⓒ김동문

필자는 이 시에 담긴 느낌은, 예수께서 아래와 같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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