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패트릭 데이와 위스키의 역사
성 패트릭 데이와 위스키의 역사
  • 편집부
  • 승인 2024.03.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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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ky와 Whiskey, 그리고 와인의 차이는?

# 정말 패트릭 성자가 위스키를 처음 만들었을까? #Whisky Whiskey, 그리고 와인의 차이는?

패트릭의 (St. Patrick's Day)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파트리치오(386 ~ 461) 기념하는 날이다. 그가 별세한 3 17일을 축일로 지키며 온갖 초록색으로 이날을 축하한다. 아일랜드 계열이 많은 지역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행해지지만 대개의 지역에서는 무심히 지나가는데 의외로 한국에서도 지난 2001년부터 생패트릭 행사를 갖는다.

파트리치오는 16살에 해적에 납치되어 아일랜드로 끌려가 노예로 지냈다고 한다. 어렵게 노예로부터 탈출해서 잉글랜드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사제가 되었다. 그는 노예생활의 악몽이 있는 아일랜드로 돌아가 복음을 전한다. 특히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잎이 개인 토끼풀을 사용했다. 토끼풀이 성패트릭의 상징풀이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초록색도 토끼풀 색에서 나온 것이다.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오랜 갈등으로 유명해서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을 통해 많이 소개되어 왔다. 모든 반란의 시초는 1798 아일랜드 반란, 사실은 독립전쟁이었다. 무참히 패배했지만 아일랜드 군인들이 녹색옷을 입었기에 역사적 슬픔과 저항을 상징하는 색 되었다.

파트리치오에 관계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가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알콜의 증류법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파트리치오가 위스키를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아일랜드에서는 매년 성패트릭 축제 주간이 되면 평소보다 위스키 매출이 늘어난다. 아일랜드의 인구가 5백만명인데 소비되는 위스키만 해도 500 병이라고 하니 성인 기준으로 적어도 1 2병이상의 위스키를 기간동안 마시는 셈이다. 아일랜드 위스키 대표적인 것이 초록병의 40% 제이머슨(Jameson)인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스가치 위스키에 비해서 맛이 탁한 편이다. 그러므로 (Shot) 보다는 얼음을 섞어 (On The Rock) 마시는 쪽을 추천한다.

그런데 정말 파트리치오가 증류주의 시조일까? 증류 기법은 본래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이 금을 얻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었다.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전통상 그들이 증류주를 처음 만들었을리는 없고 증류법이 알콜 증류에 적용되면서 증류주가 나왔으니 일단 파트리치오가 시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젊은 시절을 로마 문화권에서 보낸 파트리치오가 증류주에 접했을 가능성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파트리치오 보다 200 정도 지나서야 처음으로 증류법이 유럽에 소개되었거니와 로마 문화권에는 발효주인 와인이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문헌에 따르면 12세기에 들어서야 증류주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공한 그들이 마시고 있던 ‘생명의 물’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영국으로 가져 오면서 본격적인 위스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생명의 물은 라틴어로 Aqua Vitae인데 게일어로 하면 Uisce Beatha. 게일어가 변질되면서 위스키가 되었다. 그러니까 아일랜드에서 처음 증류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원은 불분명한데 위스키의 효시인 것은 맞다. 오늘날은 위스키의 본고장이 스코틀랜드이지만 기원이 아일랜드였음을 고려할 아일랜드에서 파트리아치가 증류주를 만들었다는 원조 전설을 만들어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미묘한 정통성 논쟁이라고 하다.

아일랜드보다는 하지만 스코틀랜드도 잉글랜드로부터 핍박을 받아 것은 유명한 사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Outlander(추방자) 불렀다. 넷플릭스 드라마 Outlander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오랜 갈등을 다룬 타임슬립(여러 시간대를 넘나드는) 드라마인데 스코틀랜드 저항군들이 위스키를 밀조해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내용이 줄거리에서 부분을 차지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스카치) 위스키는 스펠링이 Whisky지만 아일랜드, 미국에서 만든 위스키의 스펠링은 Whiskey. 스코틀랜드는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스펠링을 강조하는데 스코틀랜드 이외의 나라에서 스코틀랜드와 같은 스펠링을 쓰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위스키 역사는 100 정도 되었다. 1918 양조 기술자인 다케츠루 마사타카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제품을 출시했기에 스코틀랜드 스펠링을 쓰게 되었다. 일본 위스키가 1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저평가되어 왔지만  마실만하다는 사실이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에서는 켄터키주와 테네시주가 유명한 위스키 생산지로, 각각 Kentucky Bourbon’과 Tennessee Whiskey’를 출시하고 있다. 버번은 옥수수로 만들고 위스키는 맥아 보리로 만드는 차이가 있다. 테네시 위스키도 사실은 버번인데 이름에 위스키를 강조했을 뿐이다. 버번은 호불호가 심해 통상 칵테일로 만들어 마신다. 스카치 애호가들이 버번을 아래의 술로 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무튼 ‘생명의 물’에서 출발해서 파트리아치의 전설이 추가된 위스키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술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와인은 기득권자들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3세기 교황 마르티누스 4세는 와인을 마시다 죽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황은 “베르나챠의 포도주에 볼세나의 뱀장어를 담가 먹은 죄로 탐식의 벌을 받은”(연옥 24) 것이다.

반면 위스키는 저항의 ,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함께 성장해 술이다이런 이야기도 있다. 기록상으로 스코틀랜드 최초의 증류주를 제조하던 곳은 에딘버러 북쪽 1시간 거리에 있던 린도레스 수도원이었다. 15세기부터 증류주 생산 기록을 가진 린도레스 수도원에는 제임스 4세가 왕명으로 수도원에 아쿠아 비테를 주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문서의 문구는 "왕의 명령에 따라 수사에게 8볼의 맥아를 주어 아쿠아 비테를 만들라"였다. 볼은 양을 재는 스코틀랜드의 옛단위인데 연구가들에 따르면 8볼은 엄청난 양의 '생명수(아쿠아 비테)'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한다.

가톨릭 소유였던 수도원은 낙스의 종교 개혁으로 폐쇄되면서 대부분의 기록이 없어진 아쉬움이 있다. 낙스는 건물을 가난한 시민들의 주거지로 전용했다. 그렇다고 모든 증류소가 문을 닫았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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