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서 2인자들의 실패의 역사
한국 정치사에서 2인자들의 실패의 역사
  • 글벗
  • 승인 2024.03.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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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전인 1967 3 6 중앙일보에는 저우언라이(주은래)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제목은최근의 중공사태와 주은래’. 중공사태라함은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말한다. 기자(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중국() 국교가 단절되어 있던 시절 비교적 합리적 지도자로 평가받던 저우언라이가 실제로는 문화대혁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하룻 사이에 권력구도가 바뀌던 문화대혁명 후기 시절 린뱌오( 마오의 후계자로 인정받았으나 마오에 의해 축출되었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1971년사망), 마오의 아내 장칭(1991 가택연금 스스로 생을 마감) 등이 이선으로 물러가고 저우언라이가 실세로 부각했다.

그는 교도소 담장위를 걷듯이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 측근 류사오치(유소기) 출당조치에 관여하면서 자신도 4인방의 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마오는 그를 궁극적으로 내치지는 않았다. 비겁한 이인자라는 오명 속에서도 그는 자금성 등 중국의 문화재들을 문화대혁명의 광풍으로부터 지켜 내었다.

날선 권력구도 속에서 살아남은 저우언라이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미중 수교의 공신 헨리 키신저는 저우언라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마오는 어떤 모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저우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마오의 열정은 반대파를 압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저우의 지성은 그들을 설득하거나 이용하려 했다. 마오가 냉소적인 사람이었다면, 저우는 냉철한 인물이었다. 마오는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생각했고, 저우는 행정가나 협상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마오는 역사를 가속화하기를 열망했지만, 저우는 그것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에 만족했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반면 그에 대한 혹평도 만만찮다. 달라이 라마는 오히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지만 저우언라이에 대해서는 간사한 인간이라는 평을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인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오른쪽 부터 마오쩌둥, 김일성, 저우언라이
오른쪽 부터 마오쩌둥, 김일성, 저우언라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군주가 읽어야 필독서라면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신승미 옮김, 북스토리) 궁정 신하의 처세를 가르치는 책이다. 한국어 번역판에는위대한 이인자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궁정으로 손꼽혔던 우르비노 궁정에서 12 동안 통치자 2명을 보필했던 경험을 살려 책을 썼다. 그가 꼽는 좋은 신하의 조건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야 하고 정치적 협상에 능해야 한다. 또한 신하는 자신의 능력을 군주를 보필하는데 써야하고 특히 군주가 해야 하는 것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저우언라이의 생물학적 혈통은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사회주의권에서 존경받는 혁명세대였고, 그를 만났던 외국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평판처럼 뛰어난 협상가였다. 안타깝게 그는 지병때문에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영원한 이인자로 끝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이인자들은 수난의 시절을 보냈다. 박정희는 김종필 이후락 김형욱 김재규 등을 염두에 두고 저울질했으나 누구도 믿지 못하다가 결국 김재규의 총탄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은 쿠데타 공범인 노태우를 믿지 못해 노신영 여러 사람을 물망에 올려 자신의 퇴임후 상왕이 되려 하였지만 결국 노태우에게 넘어갔다. 노태우는 친척벌인 박철원을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결국 김영삼에게 되치기를 당하고야 말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차기 지도자 문제에 있어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이회창이 이인제를 제치고 차기 주자로 선출되었으나 김영삼은 이회창을 무시했고 결과 이회창은 김대중의 벽을 넘지 못했다. DJP연합으로 창출된 정권에서 김종필은 다시 차기가 보장된 이인자 행세를 하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김대중은 차기 지도자 선출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으나 노무현은 향한 그의 심중은 확실했다. 과정에서 김대중의 동교동 계열들이 반발했고 1세대 동교동계들은 거의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부역하고 말았다. 막내 세력이던 추미애와 이낙연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갈라 섰다.

노무현 문재인 모두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에는 흠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가 또는 어떤 세력이 민주주의를 계승할 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그 미래 전략은 대의민주주의로 완성되지 않고 정치 철학적 토대가 있어야 했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그로 인해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컸고 지금도 크다.

위에 거론한 인물들은 이인자에서 지도자가 되기까지 다시말해 신하에서 군주가 되기까지 어쨌든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인자 시절 자질을 얼마나 갖추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발데사르 카스틸리오가 제시한 덕목 중에 두개는 갖추고 있었다고 있다.

요즘 우리는 덕목 중에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차기를 꿈꾸는 신하 아무개를  보고 있다. 그가 주군에게 드리는 인사의 각도로만 보자면 매우 충직한 신하처럼 보인다. 하지만 발데사르 카스틸리오의 기준에 턱도 없이 부족하다.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민주화 운동권 세력도 아니다. 출신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한동안은 그들을 비난하더니 변절한 운동권 세력를 공천하는 것으로 열등의식을 해소한다.

정치적 협상력은 전혀 없어 상대 진영의 지도자들을 호칭하면 자신이 높아지는 아는 풋내기다. 예술적 소양은 기타를 잠시 배워본 것이 유일하며 그것도 그의 주군의 연주를 보고 감명받은 것으로 보인다.

왕정시대와 달리 민주사회에서 영원한 신하는 없다. 언제든지 군주가 있다. 하지만 발데사르 카스틸리오가 말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하면 군주가 되어도 여전히새는 바가지 뿐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주군을 통해 확인했으면서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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