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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이 주는 거짓 자존감

기사승인 2018.09.22  23: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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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순규의 [세상사는 이야기]

미국엔 대형 무선전화회사가 넷 있다. 우리 가족은 그중 통신 시설이 가장 좋다는 V사 고객이었다. 적어도 지난 15년 동안 이 회사 시스템에 연결되는 전화기를 갖고 다녔다. 처음에는 아내와 나만 가입해 고객이 둘뿐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비롯해 우리 계좌에 가입돼 있는 사람이 여섯이나 된다. 그러다보니 비용도 꽤 불었다. 요금 230달러에 세금이 더해진 고지서를 다달이 받았다. 그리고 이 액수가 자동으로 매달 카드 계좌에서 결제됐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마 전 나는 가정 예산을 다시 짜면서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전화비용에서 컴퓨터 커서를 멈췄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돼버린 스마트폰 서비스업은 언젠가부터 회사에 따라 서비스 질이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커머디티화된 분야가 됐다. 이 사실을 증권 분석 일을 하는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가장 비싼 요금으로 알려진 V사를 떠나 경쟁사로 옮길 것을 검토하지 않았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내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우리는 2013년 여름까지 뉴저지주 서밋(Summit)이라는 타운에 살았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뉴욕시를 떠나 근교로 이사하려고 할 때, 옛 모건사 동료가 살고 있던 서밋에 놀러갔다가 그곳으로 결국 이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크리스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우리는 10년 동안 살았던 서밋을 떠나 북뉴저지에 있는 페어론(Fair Lawn)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아, 페어론, 평민들 사는 데."

그때 당시에는 그저 웃고 넘겼다. 그리고 살고 있는 도시나 졸업한 학교, 다니는 회사나 즐겨 가는 휴가지 등의 이름을 내세워 다른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려는 분위기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평민들이 사는 페어론에서 왔다며 빈정대는 말투를 쓰곤 했다. 그런데 왜 전화회사 선택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이 기억이 내 뇌리를 스쳐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S사로 바꿨다는 사람들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아직도 V사 고객이라는 사실에서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가졌다는 사실, 그래서 무엇이나 최고의 것을 쓴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보여주려는 사람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고 있는 지역, 타고 다니는 차, 들고 다니는 가방 등의 이름에서 자존감을 얻는 이들보다 더 바보스럽게 돈 낭비를 해 왔던 나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 있던 V사가 주었던 어처구니없는 자존감 같은 것을 내려놓기로 한 나는 즉시 무선전화회사 쇼핑에 나섰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부터 S사 고객이 됐고 한 달에 110달러로 전화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상품이 아니다. 따라다니는 라벨로 다른 이들을, 또 나를 판단할 수 없다. 인정받기 위해, 부러운 눈길을 얻기 위해, 또 가볍게 보거나 얕보는 듯한 눈길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시할 수 없을 만한 노력과 액수일 것 같다. 내가 만일 계속 V사를 고집했다면 한 달에 120달러, 1년에 1440달러, 10년이면 1만4400달러(약 1600만원)를 낭비했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쓸데없는 자존감을 사기엔 너무 큰 액수다.

돈 낭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것들이 내게 거짓 우월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나의 인간적 가치는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나의 자산과 재능을 지혜롭게 쓰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나에게 더 소중한 가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방해하는 이름들, 아직도 나를 거만하게 만드는 그것들을 내게서 없애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다.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신순규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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