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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버노 인사 청문회를 통해 본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

기사승인 2018.10.10  0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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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대법관 지명자 브렛 캐버노의 사춘기 시절 미수에 그친 성폭력 추문으로 지난 몇 주일 간 워싱턴 정가는 물론 미국 전체가 시클 벅적하였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민주-공화로 양분된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인사 청문회의 공방은 결국 소득 없는 통과의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양심을 걸고 100% 진실이라는 포드 교수(피해자)의 증언과 하나님 앞에서 맹서코 거짓이라는 캐버노 지명자(가해자)의 증언이 정확히 서로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원 의회의 투표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다수당인 공화당이 트럼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어렵사리 청문회에 나와서 두려움 가운데서 증언했던 포드 교수의 용기와 진실은 '청문회 절차와 공정성(fairness)을 둘러싼 '썰전'에 가리워서 그저 그렇고 그런 사춘기 소녀의 해프닝으로 희화화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정의'란 미명하에 당리당략을 위한 실용적 잣대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이자 다른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 워싱턴의 왜곡된 구태가 이번에는 팩트 자체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기상천외한 사단으로 치달았다고나 할까요? 법이나 규정이란 최소치에 불과한 것일 터, 이 방법론적인 최소치에 기대어서 진리와 정의, 자비와 같은 고상한 도덕적인 가치를 저버리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환원주의/축소주의로 퇴보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사실 확인(fact check)조차 거부함으로 최소한의 법적 요건조차 무시한다면 결국 자멸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논리와 레토릭은 그럴듯해 보이나, 이는 다 진리와 정의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선거전 선점이나 당장의 당리당략적인 실리를 건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니, 청문회 증언과 연방 수사국의 백그라운드 첵, 인준 투표와 같은 엄중한 권위가 도리어 팩트를 덮어 가리고 최종적 판단 기구인 사법부의 공정성을 훼손하여 불신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어도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 것인지, 관료화의 각질이 두터워지면서 켜켜이 쌓여온 미국 의회 민주주의의 적폐와 한계가 이번 일로 그 수치스럽고 구차스런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하겠습니다. 저들은 팩트를 찾으려는 것 같았으나 결국 팩트를 찾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만 신경을 쓸 뿐이었고,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으나 실은 그것 역시 기득권을 상실하게 될까봐 안절부절하는 듯이 보였으며, 쪽수/다수의 힘을 내세워(Tyranny of Majority) 결국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합리화하려는 결정적인 계기를 찾기에 급급하였던 게 아니었을까요?

한 사람이 맞으면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틀리다고 해야 마땅할 텐데도, 포드 교수의 말도 맞고 캐버노 판사도 맞다는 생뚱맞은 논리를 전개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갖은 레토릭과 상상력을 동원하였던 게 아니었던가요? 대체 선진 민주국인 미국 상하원 의회를 포함하여 워싱턴 정가에 이처럼 명백히 자가당착적인 생뚱맞음을 맞닥뜨리고 '이래선 안 된다'고 맞설 수 있는 용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걸까요? 아마도 오랜 세월 진영 논리에 매몰된 양당 체제의 한계와 율법주의적 디테일의 사슬로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고상함을 도리어 질식의 위기로 내몰고 있는 제도화된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이제는 체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진리/팩트는 엉뚱하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본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미투를 통해 커밍아웃한 성추행의 피해 여성들, 무력해 보이는 그들의 애통과 절규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결국은 되살려 낼 것입니다. 국민된 도리(civic duty)를 다하기 위해 개인적 수치와 가족들의 안전을 무릅써야 했던 포드 교수의 떨리는 목소리는 미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FBI조사도 생략한 채로 표결에 부치려던 찰나 공화당 내에서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널리 알려진 애리조나 상원 의원 제프 플레이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계기 역시 무명의 미투들(survivors) 덕분이었습니다: '성희롱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한 우리 여성들의 쓰라린 경험은 당신네 정치꾼들의 눈에는 하나도 중요한 게 못 된다는 말이오?'(My experience doesn't matter?) '제발 지금껏 소신을 지켰듯이 진리와 정의 편에 서 주시오. 위대한 미국을 위해 진정한 영웅이 되어 주시오!'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팩트 자체조차 뭉개버리려던 공화당의 전략적 해법이 당장은 승리한 듯이 보입니다. 캐버노 판사의 인준으로 공화당은 엄청난 힘(정치력)을 거머쥔 듯 보이지만, 그러나 그 승리는 도리어 수적 우세함에 근거한 천박한 편법성에 기대고 있는 자신들의 비겁함을 일거에 드러내고 만 처절한 패배라 해야 할 것입니다. 팩트/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판단은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나 수사로 포장한다 해도 결국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이 빠진 이데올로기는 아무리 그 논리가 정연하다 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해서 이 세상에 팩트보다 더 겁나는 것은 없으며, 그 팩트(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양심과 진정성에 근거한 도덕적 품성(character)보다 더 용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아마도 이 때문에 순전하지(integrity) 못한 이들은 자꾸만 사실을 은폐하려 들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려는 것이겠지요?! 포드 교수가 진짜(Fact)라면, 캐버노 판사는 가짜(Fake)여야 합니다. 캐버노 판사가 진짜라면 포드 교수는 가짜여야 합니다. 만일 [아직은] 진실을 판단할 수 없다면, 적어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유보/기권하는 것을 용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정치적 권위를 들먹이고 권세를 휘두른다면, 이는 기껏해야 결국은 허물어지고 말 모래성을 쌓을 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화려한 허세로 귀결되고 말 것이며, 이런 권한을 위임한 국민들을 함부로 하는(abuse) 처사가 될 것입니다.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절망스러운 뉴스가 아메리칸 드림의 빛을 점점 퇴색시키는 듯하여 한편은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이제 이만하면 가짜를 버리고 진짜로 돌아서야할 날이 가까왔다는 희망을 동시에 품어 봅니다. 위대한 아메리카는 팩트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습니다. 팩트는 위대하고 팩트는 영원하며, 무엇보다 팩트는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용기 있는 사회, 그런 겸허한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 무엇보다 존경받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드림 사회라 하겠습니다.

권영석 목사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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